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포격만 당했나요? 사병 월급도 동결했죠”

등록 2010-12-08 08:24수정 2010-12-08 18:24

2007년 5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2007년 5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영원한 왕수석’ 문재인 변호사의 MB를 향한 직격탄, 그리고 노무현 시대의 성찰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29화 문재인과 공개 직설

거대한 세개의 나침반

자전거는 멈춰 서 있었다. 향리로 내려간 노무현이 타던 자전거는 전시 유리판 너머에서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튼 채 방문객들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아직 바퀴고무도 다 닳지 않은지라 끄집어내서 페달을 밟으면 달려 나갈 듯했다.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진다. 민주 또한 마찬가지다. 까마귀도 울고 가는 헐벗은 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세상을 배불리고자 만들어가던 방앗간이 문을 여는 걸 보지 못했다.

읽던 책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주사기, 그리고 익지 않은 모과를 마당에 둔 채 김대중은 돌아갔다. 거실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쟁반을 놓고 김대중, 이희호 두 사람은 커피를 마셨다. 의자 옆 쌀바가지에는 방금인 듯 손자국이 선명했다. 마당에 찾아오는 새들에게 뿌려주던 공생의 식량이다.

리영희는 짬을 내 나무걸상을 만들곤 했다. 손과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스스로를 한량없이 부끄럽게 여겼다. 딸에게 스케이트 날을 가는 숫돌 틀을 만들어주던 그다. 신문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쫓겨난 신산스런 세월에 월부책장수로 살아가던 지성의 스승이 쓴 책 뒤에는 한결같이 ‘비매품’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판금된 정의를 그나마 돌려 읽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병들 무렵에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 살면서도 늘 따뜻함에 감사해했다.

온몸으로 시대 양심을 살던 세 사람은 그 퇴행을 꾸짖다가 한날한시인 듯 떠나갔다. 이제 누가 그 페달을 돌릴 것인가. 누가 다시 새를 부를 것인가. 누가 진실과 정의가 와서 앉을 의자를 새로 만들 것인가.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자북)으로만 가면 진짜 극점에 도달할 수 없다. 지도에 나온 표시(도북)대로만 따라가면 참된 정의에 발 디딜 수 없다. 스스로 나침반이 되어 행동과 실천으로 수정해나가야만 거기(진북) 이를 수 있다는 걸 세 사람은 증거한다. 제 가슴에 나침반이 아직 없거나 벌써 망가졌다면, 오늘 나침반 하나씩을 품에 들이자. 우리가 나침반이 되자.

서해성



직설이 ‘방’에서 나왔다.

은밀한 아지트(!)에서 편한 복장과 편한 자세로 떠든다는 신조를 깼다. 한홍구와 서해성은 정장을 입었다. 100여개의 눈이 지켜보는 자리다. 오늘은 사상 최초의 공개 직설. 서울이 아닌 부산!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재인(57) 변호사를 모셨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시민교육원(원장 백영제)의 초청으로 성사된 행사다. 민주시민교육원은 시민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부산에서의 공개 직설 이벤트를 <한겨레>에 제안했고 직설팀은 ‘문재인 이사장 섭외’를 조건으로 응했다. 2008년 2월 청와대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처음으로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그다. 행사는 12월6일 국제신문 4층 대강당에서 저녁 7시부터 열렸다. 10시 반 막차 케이티엑스(KTX)를 놓칠 뻔할 정도로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문재인 이사장은 ‘직설’에 대한 섭섭함도 솔직하게 전했다. 지난 6월의 이른바 ‘놈현 관장사’ 파문에 관해서다. 그는 “그런 식의 냉소가 설령 일말의 진실을 담았더라도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홍구와 서해성은 “상처받은 분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행사 전 김해 봉하마을에 들러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문재인 이사장의 말은 짧고 담백했고 진솔했다. 화기애애한 덕담이 흘렀다. 웃음과 박수가 자주 터졌다. 그렇다고 마냥 훈훈하지는 않았다. 민감한 대목에선 문재인 이사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말 그대로 ‘직설’이 지배했다.

부산/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부산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직설은 원래 무게 잡지 않고 쉽게 말하고자 만들었는데 걱정입니다. 공개토론이기도 하지만 다 아시다시피 문재인 실장이 상당히 근엄한 분이라서.(웃음) 나는 ‘실장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냥 쓰겠습니다. 노무현 시대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할지에 관해 좋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문재인(이하 문) 내가 가벼운 것도 무겁게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내심 걱정되긴 합니다.(웃음) 나는 아직까지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 국정에 대해 평가하는 게 편치 않습니다. 내가 충분히 객관적인가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때가 좀 이르기도 하고. 하지만 노무현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건 오늘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있고, 이명박 정부와 여러모로 대비가 되고, 2012년 대선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와도 관련 있지요. 편하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다 생각해서 감히 나왔습니다.

내무반 등 처우 개선해야 국방력 높아져


문재인 변호사는 참여정부의 여러 한계를 솔직히 인정했다. 이를 넘어 2012년엔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말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문재인 변호사는 참여정부의 여러 한계를 솔직히 인정했다. 이를 넘어 2012년엔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말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홍구(이하 한)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였던 분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습니다. 어제는 리영희 교수 빈소에, 오늘은 봉하마을에 다녀왔는데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 심정이 참 착잡한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수록 참여정부 시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문 실장님 섬세하게 생기셨죠? (청중들 “네”로 화답) 요샛말로 훈남이죠. 놀라지 마십시오. 이분 공수부대 특전사 출신입니다. 김포에 근무하셨죠?

제1공수 특전여단, 하하하.(웃음) 여단장 전두환, 대대장 장세동이었습니다.

특전사 출신으로 연평도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음~(한숨). 정말 걱정스럽죠. 북한에서 엔엘엘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오래됐거든요. 참여정부에서 이걸 극복하기 위해 10·4 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기로 했던 걸 이명박 정부가 폐기해버렸죠. 도발 때 대응도 한심스러웠고.

포탄이 연평도가 아니라 청와대에 떨어진 셈이죠. <조선일보> 표현을 빌리면 청와대 안보라인이 초토화됐죠. 사태 직후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급히 불렀는데 국회에 있다면서 한 시간을 개기고 안 갔잖아요. 국정원장은 도발 정보를 청와대에 줬다면서 덮어씌웠지요.

이 정권을 흔히 ‘군 미필정권’이라고들 하는데, 군통수권자가 꼭 군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철학과 정신이 문제겠죠. 참여정부 기간에 사병들 봉급이 평균 40% 정도 올랐습니다. 출범할 때 병장 2만원이었어요. 마지막에 10만원 가까이 됐는데 지금까지 동결이에요. 장병 사기, 대응 태세도 문젠데, 지금 그런 부분들이 사병 봉급 동결로 보이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말도 안 듣는 거예요.(웃음)

사병 봉급 오른 게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부산물이라는 거,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참여정부가 사병들한테 잘한 게 월급 올려준 일과 복무기간 줄인 일이죠. 기가 막힌 반비례입니다.

내무반이란 게 나무침상에 나란히 누워 자는 거죠. 정상적 처우라고 보긴 어렵죠. 거기서 원산폭격 따위 기합들도 행하고. 이걸 다 개인침상으로 바꾼다든지 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국방력과 전투력도 높아지죠.

지금 내가 누리는 인권과 복지를 위해 싸우는 군대가 젤 강하거든요.

참여정부 초기에 ‘검사와의 대화’를 했죠. 그렇게 출발했다가 검찰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검찰개혁 실패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어요. 대통령이 검찰을 정치적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지만.

‘검사와의 대화’와 집현전의 학사들

<운명이다>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얻었으면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가슴이 아팠어요. 암튼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이 그렇게 말씀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검찰개혁을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 대검 중수부 폐지는 못했죠. 정권이 바뀌어도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게끔 왜 대못을 치지 못했냐 하는 말씀인데, 검찰 내부에서 동력이 나오거나 검찰 중립 문화가 이어져나가면서 굳어가야 하는 거죠. 검찰 권력을 이렇게 쓰는 현 정권의 잘못이지 참여정부의 개혁 불철저 때문은 아니죠.

진보진영이 다시 집권했다고 칩시다. 그럼 또 5년 동안 검찰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다 물러난 뒤에 또 검찰에 불러가야 합니까?

더 면밀한 대안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때 민변 같은 시민단체에서 요구한 검찰개혁은 완전한 독립이었어요. 법무부에서도 독립시켜 인사권마저 검찰에 주자는 거였죠. 그게 초래하는 폐단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거죠. 두 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검사와의 대화’를 보면서 세종을 떠올렸어요. 그때 집현전 학사들이 젊었거든요. 이들과 검찰개혁을 해보겠다는 뜻이 있었을 듯합니다.

문제는 검사들이 집현적 학사가 아니었다는 거죠.(웃음)

그날 대화 수준이 그랬죠. 시종일관 인사 문제만 되풀이 얘기했죠.

역시 <운명이다>의 한 대목인데,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줄 권한이 없었다. 그 소유자가 정권까지 잡으려 한다.’ 박정희가 빼앗은 정수장학회(구 부일장학회) 이야기거든요.

과거사위에서 과정의 불법성을 인정했지만, 재판절차 없이 되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죠.

법의 정의만 살아 있고 법심이랄 수 있는 민심은 반영할 수 없다니, 청중 여러분, 그럼 민주정부 뭣하러 세웁니까?(웃음)

이명박은 잘 뺏어서 돌려줍니다. 상지대!(웃음)

부산시민들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인물들로 재단을 구성해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부산일보나 부산문화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식의 해결이 바람직하겠지요.

정수장학회 쪽은 박근혜 이사장이 물러났고 재단은 완전히 공익재단이 됐다고 주장합니다.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딴 ‘정수장학회’인데 이사진들은 두 분을 존경하는 사람들로 구성했다고 하죠.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 기부한 뒤 지인들로 이사진 구성한 거랑 비슷하네요.(웃음)

참여정부 대표적 업적이 과거사규명이죠. 과거사 관련위원회를 20개 안팎으로 만들었고 월급 받은 직원이 1000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가해자도 감옥에 못 보냈죠.

부당한 권력 행사자들을 처벌까지 하려면 거의 혁명적 상황이 되어야겠죠. 참여정부는 남아공 만델라 정부가 했던 과거사 정리 방식을 택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두 번 부활하신 분이죠. 탄핵이 될 뻔했다가 다시 돌아오고, 돌아가신 뒤 민장으로 다시 부활하고. 탄핵 취소하라는 광화문 촛불집회 보면서 권양숙 여사께서 ‘우리 편이 저렇게 많구나’ 하니까 대통령께서 ‘저 사람들이 탄핵 취하 뒤 나한테 무슨 요구를 할지 심히 걱정이 된다’고 했어요. 정말 노무현다운 언어입니다. 탄핵이 탄핵된 다음 열린우리당이 총선에 이길 때 여러분은 뭘 기대하셨습니까? 이 대목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는 줄 압니다.

국민이 만들어준 좋은 찬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화해와 상생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화해와 상생은 장검을 휘두른 뒤 살아남은 사람들과 하셨어야 했는데.(웃음) 그 뒤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죠. 행정수도, 사학법 걸리고, 뉴라이트 튀어나왔죠. 국가보안법도 철폐하지 못하고, 2006년부터 밀리기 시작했어요.

탄핵 소식을 네팔에서 들으셨다고요?

민정수석 그만두고 안나푸르나에서 트레킹을 할 때였죠. 숙소에서 영자신문을 보니 ‘임피치(impeach)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요. 기사를 더듬더듬 읽어보니 노무현 대통령께서 탄핵 당했다는 뜻으로 읽히더라고. 그래서 귀국을 했는데….

전화연락은 안 해보시고?

네.(웃음) 돌아오는 길에 방콕의 영자신문은 더 크게 1면에 썼더라고요. 그때가 탄핵안이 국회 상정될 때였죠.

잠깐만요. 네팔과 태국에서 전화비가 없으셨나요?

비싸요.(청중 폭소) 아니, 실제로 비싸요.(더 큰 폭소) 귀국한 날 대통령 기자회견이 상당히 도발적이더라고요. 결국 탄핵소추로 갔죠.

한홍구-서해성의 공개 직설
한홍구-서해성의 공개 직설

노무현은 왜 그렇게 삼성에 약했을까

자기 주군이 탄핵을 당해서 대통령을 못하게 됐다는데 전화비가 없어서 전화를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청중 하나 “멋있습니다.”)

이상한 게 집권 1년차 극심한 여소야대 시절엔 뭉쳐갖고 중요한 거 다 해냈어요. 지방균형발전법, 행정수도 옮기는 거라든지, 탄핵사건 뒤 과반수가 되고 나니까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민주적 당정분리가 시기상조였다는 분석도 있어요. 그 기간을 허송했다는 지적은 100% 변명할 길이 없다고 봐요. 결정적으로 대통령이 대연정 제의를 해서 기대를 걸었던 분들에게 실망을 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는데 ‘굴욕적 평화’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굴욕적 평화라면, 그 반대로 참된 전쟁이 있다는 말인가요? 10·4 정상회담(2007년)의 추진위원장이셨는데 혹시 뭘 굴욕 당하기라도 했는지요.

참여정부 때는 없었던 현상이며, 없었던 말이 새로 생겨난 거죠?(웃음)

두 분이 넘 답답하게 대화하시네.(웃음) 김영삼 대통령이 왜 6·15 정상회담을 씹겠습니까? ‘저걸 내가 했어야 하는데’ 하는 거죠.(웃음)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진보진영은 이라크 파병과 미군부대 평택 이전 등을 실로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라크 파병은 안 하는 게 좋았겠죠. 부당한 전쟁이었으니까. 한데 국정은 사리만 갖고 결정할 수 없죠. 당시 초미의 관심사는 북핵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응에 제동을 걸면서 이걸 외교적 틀로 가져가는 거였죠. 미국 협조가 필요했고 그 반대급부가 파병이라고 봤습니다. 덕분에 6자회담이 가능했고요. 시민사회 파병반대운동을 디딤돌로 삼아 비전투병에 한해 최소인원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지역으로 보냈어요. 그 뒤 실망해서 안 만나겠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대추리 주민들이 근거지를 잃고 다른 데로 가게 된 건 가슴 아픈 일이죠. 대추리 주민 이주에 대하여 성의 없었다 비판하면 모를까 원론적으로 반대하고 비난하는 건 좀…. 수도 서울 한복판에 미군기지가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거 아닙니까?

한 교수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평화운동 해왔으면서.(웃음)

그때 대학로에서 열린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에 가서 ‘노무현 정부 각성하라’ 구호를 외친 뒤에 시청 앞으로 와서 ‘탄핵반대’ 구호를 외쳤어요. 평화에 대해 참여정부가 애를 썼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삼성 문제도 그렇지요. 민주화되고 난 다음에 덕을 가장 많이 본 게 재벌인데 삼성이 으뜸이지요. 왜 그렇게 재벌에 약했을까요?

삼성 도청사건(미림사건) 같은 경우는 다시는 안 일어나도록 제도적 개선을 이뤘고, 비자금도 이건희 회장이 기소가 돼서 많은 돈을 사회에 내놓았죠. 민주개혁진영은 전체적으로 봐 사회 분야에 비해 외교국방경제 분야에서 약합니다. 전문가들이 들어왔지만 관료세력에 밀렸죠. 경제 쪽에선 근본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진보개혁진영 집권을 위해선 사람 준비가 꼭 필요한 거죠.

에프티에이는 왜 그토록 체결하려고 했는지요. 며칠 전 이명박 정부 아래서 재협상이 타결됐는데 자동차마저 내주기로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계승한 거의 유일한 노무현 유산인데.(웃음)

대통령은 늘 협상대표들에게 장사꾼 셈법으로 따져 수지가 남으면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파토 내라고 누차 지시했습니다. 관료사회에 퍼져 있는 ‘개방’ 중심의 사고들에 지속적 견제도 했습니다. 포괄적으로 국가에 이익 되는 걸로 봤기 때문에 타결했던 거죠. 통상으로 먹고사는 현실에서 에프티에이 자체를 악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은 그렇게 얻었던 것들 다 내줌으로써 이익의 균형을 내버렸어요.

“김진숙과 김주익을 기억하세요”

부산 노동자 김진숙이 쓴 노 대통령 추도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다.’ 아까 진보진영에 준비된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왜 파업을 지지하다 구속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대한민국에서 노동사건 제일 많이 한 문재인이 왕수석이 되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때 김진숙의 변호사가 노무현이었지요.

진보개혁진영 역량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정권을 담당한 어떤 그룹만의 힘으로 개혁을 할 수 없어요. 정권과 시민사회 사이에 거버넌스(협치)가 필요합니다. 서로 당기고 밀어주고 요구하고 받아들이고. 가령 잘할 것 같던 교육 문제도 전교조와 힘을 모으지 못했어요.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으로 등을 돌렸고, 노동 문제는 개혁진영 내부 헤게모니 싸움이 있었죠.

참여정부의 역사적 운명이 신자유주의 대세에 가로막힌 부분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민에게 반자유, 경제적 자유는 해고당할 자유죠.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사회안전망은 ‘사회불안망’이 돼버렸죠. 참여정부가 이루지 못한 꿈은 많지만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 정부인가요. 피해가지 마시고 한 말씀.

다른 정부가 들어와도 민주10년 동안 발전해온 걸 단숨에 물거품 시키는 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걸 목도하는 거죠. 그러면서 2012년에는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생깁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들도 그런 노력의 한 부분이겠죠.(박수)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정신을 계승하자고 합니다. 계승만 말하기보다 유산상속 받을 땐 돈 되는 것만 받을 수 없죠. 상속 받아서 빚도 갚고, 한계도 넘어서야 합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위원장이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가 목을 맨 직후 노 대통령 말씀이 ‘죽음이 투쟁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였어요. 노무현은 노동자 김주익의 변호사였어요. 김주익과 노무현이 한편일 때는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었죠. 둘이 갈라지면서 한 사람은 목을 매고 또 한 사람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이것을 극복해가야죠.

김 위원장이 돌아갔을 때도, 노 대통령이 떠나갔을 때도 조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청중들 박수)

※ 직설이 부산에서 공개적으로 열리는 사정으로 조금 이른 수요일에 게재합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금요일입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