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파괴·평화파괴·생명파괴를 넘어설 책무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두려울 거 없어요. 이성의 눈을 부릅뜨면 극복할 수 있어요.” 고 리영희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2010년 마지막 길목에서 시대정신의 스승을 향한 그리움의 헌사를 보내고 답을 듣다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32화 리영희 선생과 가상대화 ‘빙의 직설’이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영혼체인지’가 떠오를 만하다. 고 리영희 선생은 두 사람의 몸에 깃들었다가 떠나기를 되풀이했다. 한편의 낯선 연극을 보는 듯했다. 번갈아가며 리영희를 연기하는 한홍구와 서해성은 청산유수였다. 고향 운산과, 포연이 자욱하던 향로봉과, 암울하던 독재시절과, 마침내 진실이 힘을 얻던 환희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MB 출범 이후의 퇴행과 지식인들의 맥없는 부진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엉뚱한 방식으로 2010년의 마지막 직설을 고 리영희 선생에게 헌사했다. 송년특집 두번째! 지난 12월5일 세상을 떠난 선생을 모시기 위해 두 사람은 ‘열공’했다. 12권짜리 전집을 포함한 모든 저작을 다시 독파했다. 선생이 처했던 상황과 논리를 머릿속에 재입력했고 상상력을 덧붙였다. 가상의 직설은 각본이 없었다. 준비된 질문이 있었지만, 답변은 즉흥적이었다. 한쪽이 물으면, 다른 한쪽은 곧장 리영희 선생으로 변신했다. 때로는 두 사람끼리 뒤바뀌기도 했다. 현장을 지켜본 독자라면 기묘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건 현실이 춥기 때문이다. 새해에도 부릅뜬 이성의 눈으로 우상과 대결하자는 각오다. 2010년 12월31일에 다시 한번 리·영·희, 그 이름 세글자를 기억해보자.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오늘은, 선생님께서 그닥 내켜하지 않으실 줄 압니다. 가상대화입니다. 직설에 꼭 모시고 싶었는데 먼 길을 가시는 바람에 그만 이리 되었습니다. 리영희(이하 리) 난 직설로 말해왔지만 직설 투에는 안 맞다고 봐야지. 벌써 돌려세워놓구선.
한홍구(이하 한) 가시는 길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리 가도 다 간 게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서 선생님은 고통스러웠던 만큼 지식인으로서 ‘고도의 행복’을 누린 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리 직장에서 네번 쫓겨나고, 옥살이가 다섯번이니, 집사람한텐 정말 못할 짓이었지. 어머님 임종도 못 했고. 노다지 천지라도 땅을 파야 금이 나오는 법 서 드물게도 선생님의 독자는 곧 제자가 되었습니다. 결코 흔치 않은 일이지요. 독자란 게 소비자 개념에 가까운데 가치와 삶을 따르는 허다한 제자를 두었으니 말이죠. 리 내 능력이 아니라 시대가 불행했기 때문이지. 기자, 교수는 많은데 몇몇이 길을 열어 가려니 보람도 크지만 쉽지만도 않았고. 서 안이든 밖이든 흔히 게바라를 본으로 삼곤 합니다. 70~80년대 한국 지식인 선배들이 걸어온 길은 높은 윤리성을 창조내해고 또 사표를 보였다는 점에서 서구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로 고난에 찬 길이었지요. 그 선배들을 광기의 분단밀림을 헤쳐나간 ‘이성의 수도승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리 분단모순이 우리 세대에 안긴 버거운 선물이겠지. 이승만 밑에서 친일파 노릇 할 수 없어서 숱한 지식인들이 납(월)북 당했지 않겠나. 그 빈자리를 몇 명이 감당하려니…. 게바라야 총을 들고 최전선에 선 사람이고. 난 고작 펜대 든 팔자였을 뿐야. 서 총 들으셨죠. 7년간이나.(웃음) ‘포티파이브’(45구경) 명사수라고 자랑스러워하시던걸요. 한 총을 든 평화주의자셨죠. ‘명사수였기 때문에 총의 무서움을 알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 금광 널린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셨는데, 선생님은 이성의 금광을 파내는 광부였다는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리 요샛말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군.(웃음) 운산이 노다지라고들 하지만 땅을 파야 금이 나오듯 지식 노동자 또한 세상을 직시하고 땀을 흘려야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법이지. 우리 아버지는 금광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숲(영림서)을 지키셨어요. 한 대개 월남한 분들이 극우반공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군대도 장기복무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냉전을 깨는 ‘의식화의 원흉’이 되었는지 늘 경이로웠습니다. 리 어렵게 돈을 모으셨던 외조부께서 독립군이 된 종에게 총을 맞아 돌아가셨어. 외조부께 죄송스럽게도 나는 늘 그 종의 놀라운 번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오. 한 해방 뒤 수도경찰청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은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어 독립군을 원수 보듯 했는데.
리 경성(서울)과 달리 평북, 함경도에서는 독립단이나 김일성 얘기를 듣고 살았어. 이렇게 눈 오는 밤이면 총 든 사람들이 와서 타격한 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게야. 그게 내 삶의 한 뿌리야.
서 요새 엠비가 눈만 뜨면 ‘전쟁’ 운운하고 난리인데, 다 엔엘엘(NLL·북방한계선) 때문이죠. 선생님은 엔엘엘의 진실 첫 장을 열어젖힌 장본인이신데.
한 연평해전 직후인 99년이었지요. 다들 엔엘엘이 해상군사분계선인 양 떠들 때 엔엘엘이란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정리하셨고, 그 뒤 쓰러지셨으니 마지막 가르침인 셈입니다.
리 이명박 대통령이 그걸 읽어만 봤어도 생각이 달라졌을 게야.(웃음) 60년대와 70년대 초반에는 베트남과 중국 문제에 주력을 했는데 곧 한반도 상황을 얘기 안 할 수 없었지. 핵무기, 남북 전쟁수행능력 비교, 한반도 주둔 미군의 피티에스디(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제기했고, 엔엘엘에 대해 말한 거야.
‘중공’과 ‘북괴’와 ‘베트콩’을 무찌르다
한 선생님을 뛰어넘는 논리가 아직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리 내가 해양대를 나와서 바다는 좀 아는 편이야.(웃음) 이 사람아, 그게 다야.
서 선생님께서는 늘 펜타곤(미 국방부) 등 미국 문서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셨습니다.
리 엔엘엘 문제로 고발을 당했는데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게 다 미국 자료 덕분이었지.
한 선생님에게 영어란 무엇입니까.
리 영어는 도구야. 합동통신 때 반년 나중에 버클리에서 또 반년 미국에 있었지. 전쟁터에서 통역장교로 일했고. 영어로 읽고 쓰고 말했어. 처음 미국 갔을 때 물질적 풍요에 놀랐지만 그게 어떻게 이뤄진 건가. 영어에 익숙해질수록 도리어 민족의식은 깊어갔지.
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통역장교 세 분이 있습니다. 리영희·문익환·정경모 세 분은 영어를 잘했지만 미국화되지 않고 더 한국화했습니다. 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광기어린 우상’에 안주해서 잘 살 수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세 분 모두 통일에 이바지하셨지요.
리 쑨원,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호찌민 등 수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제국주의 종가에서 유학하지 않았나. 앞잡이가 된 이들도 없지 않지만 습득한 그들 언어를 무기로 그들을 쳤어요. 이게 자연스러운 거고 보편인 거지.
서 선생님은 엠비정부를 평가하면서 구한말 같은 위기라고 했습니다. 유사한 국제적 역학 속에 다시 외세의 중대한 개입국면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섬뜩한 진단이었지요.
리 10년 전 중풍에 걸려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네. 그 침묵의 시간만큼 상황이 악화되는 걸 보면서 손이 더 굳어만 갔지. 올해 초 간경화로 기력이 마저 쇠해진 상태에서 연평도 사태를 대하고는 참으로 아득하고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었네.
한 지금은 초등학교 애들도 ‘남북이 싸우면 남이 이긴다’고 하지만, 오래도록 국민이 안보족들 거짓선전에 속고 있을 때 선생님께선 ‘돈 계산을 해봐라’고 하면서 남북한 전쟁수행능력비교 논문(89년)으로 시대를 깨우쳐주었습니다.
리 미군이나 정보당국이 농구공만한 움직임도 다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말했지, 외국 민간위성업체들이 상업적으로 북한 사진을 찍어서 제공한다는 것도. 국방부에서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정말 그게 가능하냐고 묻더군. 한심한 일이었어요. 남북한 전투기 조종사 실제 비행시간 차이만 해도 몇십배에 달했고. 북한의 국가예산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우리 전력이 뒤진다는 주장은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게 국민을 등치는 안보족과 그들의 나팔수 구실을 하는 언론에 맞선 거지. 이런 것들을 비이성, 광기, 분단우상이라고 불러왔던 거네.
한 선생님이야말로 실학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사구시에 입각해 공론(空論)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명답을 제시해오셨지요.
리 여전히 남한 전력이 밀리는 양 보수언론이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우리 세대에 비해 여러 지식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논의 주도권을 잡고 밀고나가는 힘이 떨어지는 건지.
서 평화로울 때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고, 전쟁 때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 우아한 말이군. 전쟁 때 내가 본 것은 묻히지도 못한 젊은 시신들이었어요. 허옇게 널브러져 있었지. 백여명 중 고작 세명만 중학교를 들어가 본 못난 군인들이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향로봉 비탈을 기어오르다가 총에 맞아 벌레처럼 굴러 떨어지던 광경을 잊은 적이 없어요. 뒤에 앉아서 전쟁이 무섭지 않다고 떠들어대는 자들하고야말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지. 그게 바로 평화야.
서 선생님을 통해 한국인은 북괴를 북한으로, 중공을 중국으로, 베트콩을 베트남으로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리 중공과 북괴와 베트콩을 무찌른 사람이 되는 셈이군.(웃음)
전기과-해양대-군인 출신의 글쓰기 스타일
한 선생님이 말해온 ‘중국’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도 소련식 사회주의도 아닌 진보세계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소비에트 체제는 붕괴했습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선생님 견해에 이의를 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리 인간에겐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향해 가는 윗도리와 원초적인 욕망이 끓는 아랫도리가 있지. 도덕적 이상만을 내세워 개인이나 자유를 억누르다 어떤 극단으로 흐르고 말았지. 비록 제한된 정보이지만 내가 중국에 대해 말하고자 한 핵심은 무엇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해 구체적 근거에 입각해 알리고자 한 걸세.
서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깨우쳐주셨는데 한홍구 교수 등이 제기한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달리 구구한 말씀이 없었던 듯한데요.
리 당시는 미군의 밀라이학살사건(68년)을 알리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지. 학살에만 묻혀서 베트남 파병 문제 자체가 가려질 수도 있었다고나 할까. 전쟁은 반드시 학살을 수반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거고.
서 스스로 언론인으로 60%, 연구자로 40%라고 하셨습니다. 요새 기자와 연구자들은 어떤지요.
리 발로 뛰는 기자, 남이 써놓은 거 긁어모아 쓰는 기자, 연구하는 기자 중 난 세번째에 해당했어요. 취재를 가면 대개 담당자들이 내 말을 피해가지 못했어. 요샌 전문가들이야 많지. 문제의식을 갖고 파고들어야 하지 않나. 정부 돈을 받고 연구하다 보면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할 테고. 문제의식을 떠났을 때 지식은 시장 정보의 일부일 수밖에 없어요.
한 시대의 교사로서 여러 저작을 남겼습니다. 전집만 12권이죠. 민주화 운동 시기에 허다한 청년들이 ‘왜 의식화됐느냐’고 법정에서 질문을 받으면 선생님 책을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이른바 ‘의식화 교재’ 다섯권 중 세권이 선생님 책입니다.(<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상>) 그중 <전환시대의 논리>를 뺄 수가 없습니다.
리 젊고 순결한 영혼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고마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곤 했어요. 책머리에도 썼지만 ‘전환’이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해야겠지. 지동설처럼 비이성의 우상을 부숴내 진실중심·이성중심·시민(민족)중심으로 세상을 바꿔내고자 했던 것일세. 지금으로서야 그 ‘바뀐 젊은이들’이 세상을 지켜주길 바랄 뿐이지.
서 평범한 교사는 말(tell)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explain)하고, 훌륭한 교사는 시범(demonstrate)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inspire)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이성의 가슴에 불을 지른 시대의 방화인이었던 셈입니다.
리 해방이 되고 나서 고학을 했어. 일본군이 남긴 부천 화약공장에서 성냥을 떼어다가 팔아 책을 사 읽었거든. 내가 성냥팔이 소년이던 때가 있었어.(껄껄)
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민청학련, 대통령 부인 저격 사망 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민주회복국민회의,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등장(74년)한 시대의 대격변기에 텍스트로 제출된 명저였습니다. 진보의 나이테를 굵게 만든 책이지요. 그리고 이듬해 베트남전쟁이 끝났습니다.
리 베트남전쟁은 69년에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네. 당시 파리에서 열린 정전협상에서 미국쪽 수석대표가 ‘남베트남은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길 하지 않았나. 세계적으로 68운동이란 게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성 때문에 일어났지. 한국 민중만 몰랐어요. 그 미몽을 깨뜨리고자 베트남 문제를 중심으로 담았네.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베트남에 갔지만…말이지.
서 흔히 ‘의식화’를 물드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우리가 얻은 의식화는 정상적인 의식을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기왕에 선생님 글의 이른바 스타일에 대해서도 한 줄 말하고 싶습니다. 짧은 문장, 건조한 문체에, ‘~같다’라는 투가 없었습니다. 현학적인 관념적 불명확성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정서적 과정은 생략돼 있었습니다. 철저히 사실에 뿌리박은 글이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행간 사이에서 정서는 폭발했습니다. 깨달음과 분노, 그것이지요.
리 사람을 쑥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난 아주 단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기과로 공업학교를 마치고 해양대를 나온 뒤 7년 동안 군인이었네. 구체적 분석에 기초해 쓰는 게 자연스럽지. 직심 있게 간결하고 명료한 건 맹호출림(猛虎出林) 평북인에게 어울리는 성싶기도 하고.(웃음)
한 전기과라서 세상을 찌릿찌릿하게 했고, 해양대라서 광활한 세상을 보여주고.
서 명사수로서 적확한 핵심을 저격하였군요. 스승이나 벗을 소개해주신다면.
중국과 베트남의 무지렁이들이 스승이지
리 혁명을 달성한 대륙의 무지렁이들과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의 찌질한 사람들이 가장 큰 스승이었다고 해두세. 우리 민주화 운동 속에 정의를 함께 지켜내고자 했던 좋은 동료들이 스승이자 벗 아니겠는가.
서 직업으로 보면 군인·기자·교수·죄수였습니다. 38따라지,·비명문대, 동창전무(全無)인이었습니다. 무연고인지라 기득권과 멀 수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불효자, 무능한 남편, 풍족하지 못한 아버지였습니다. 지식인에게 중요한 연장인 언어로 보면 일본어가 실질적 모국어였고 영어로 세상을 보고 읽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인으로 춤·고도리·바둑 따위 잡기와 무연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 이렇게 살다 간 스스로를 평가하신다면.
리 딱하기도 하구먼.(한홍구 서해성 고개 떨어뜨림)
서 일터에서 쫓겨났을 때 선생님은 월부 책장수를 하면서 시대를 이겨내셨습니다. 선생님이 쓴 책은 상당수가 판금되었지요. 책 뒤에 비매품이란 딱지가 붙을 때도 있었고요. 선생님은 광기어린 비이성 사회에서 ‘비매품 인간’이었습니다.
한 그 시대상황을 보건대 선생님과 선생님의 글은 한 시대와 대결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었습니다.
리 민주파괴·평화파괴·생명파괴까지, 무거운 짐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떠나는지라 편치가 않아요. 어느 세대에나 책무만이 아니라 이를 극복할 능력 또한 동시에 주어진다는 걸 의심치 말기 바라네.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두려울 건 없지. 우리 세대가 그러했듯, ‘전환시대’가 새해 창밖에 다가와 있음을 나는 알아. 여든해 동안 고마웠어요. 먼저 일어서렵니다. 눈이 쌓였군요.
한,서 ‘리영희 세대’를 대신해서 인사드립니다. 언 겨울 길에 보내드리게 되어서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제32화 리영희 선생과 가상대화 ‘빙의 직설’이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영혼체인지’가 떠오를 만하다. 고 리영희 선생은 두 사람의 몸에 깃들었다가 떠나기를 되풀이했다. 한편의 낯선 연극을 보는 듯했다. 번갈아가며 리영희를 연기하는 한홍구와 서해성은 청산유수였다. 고향 운산과, 포연이 자욱하던 향로봉과, 암울하던 독재시절과, 마침내 진실이 힘을 얻던 환희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MB 출범 이후의 퇴행과 지식인들의 맥없는 부진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엉뚱한 방식으로 2010년의 마지막 직설을 고 리영희 선생에게 헌사했다. 송년특집 두번째! 지난 12월5일 세상을 떠난 선생을 모시기 위해 두 사람은 ‘열공’했다. 12권짜리 전집을 포함한 모든 저작을 다시 독파했다. 선생이 처했던 상황과 논리를 머릿속에 재입력했고 상상력을 덧붙였다. 가상의 직설은 각본이 없었다. 준비된 질문이 있었지만, 답변은 즉흥적이었다. 한쪽이 물으면, 다른 한쪽은 곧장 리영희 선생으로 변신했다. 때로는 두 사람끼리 뒤바뀌기도 했다. 현장을 지켜본 독자라면 기묘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건 현실이 춥기 때문이다. 새해에도 부릅뜬 이성의 눈으로 우상과 대결하자는 각오다. 2010년 12월31일에 다시 한번 리·영·희, 그 이름 세글자를 기억해보자.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오늘은, 선생님께서 그닥 내켜하지 않으실 줄 압니다. 가상대화입니다. 직설에 꼭 모시고 싶었는데 먼 길을 가시는 바람에 그만 이리 되었습니다. 리영희(이하 리) 난 직설로 말해왔지만 직설 투에는 안 맞다고 봐야지. 벌써 돌려세워놓구선.
한홍구(이하 한) 가시는 길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리 가도 다 간 게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서 선생님은 고통스러웠던 만큼 지식인으로서 ‘고도의 행복’을 누린 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리 직장에서 네번 쫓겨나고, 옥살이가 다섯번이니, 집사람한텐 정말 못할 짓이었지. 어머님 임종도 못 했고. 노다지 천지라도 땅을 파야 금이 나오는 법 서 드물게도 선생님의 독자는 곧 제자가 되었습니다. 결코 흔치 않은 일이지요. 독자란 게 소비자 개념에 가까운데 가치와 삶을 따르는 허다한 제자를 두었으니 말이죠. 리 내 능력이 아니라 시대가 불행했기 때문이지. 기자, 교수는 많은데 몇몇이 길을 열어 가려니 보람도 크지만 쉽지만도 않았고. 서 안이든 밖이든 흔히 게바라를 본으로 삼곤 합니다. 70~80년대 한국 지식인 선배들이 걸어온 길은 높은 윤리성을 창조내해고 또 사표를 보였다는 점에서 서구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로 고난에 찬 길이었지요. 그 선배들을 광기의 분단밀림을 헤쳐나간 ‘이성의 수도승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리 분단모순이 우리 세대에 안긴 버거운 선물이겠지. 이승만 밑에서 친일파 노릇 할 수 없어서 숱한 지식인들이 납(월)북 당했지 않겠나. 그 빈자리를 몇 명이 감당하려니…. 게바라야 총을 들고 최전선에 선 사람이고. 난 고작 펜대 든 팔자였을 뿐야. 서 총 들으셨죠. 7년간이나.(웃음) ‘포티파이브’(45구경) 명사수라고 자랑스러워하시던걸요. 한 총을 든 평화주의자셨죠. ‘명사수였기 때문에 총의 무서움을 알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 금광 널린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셨는데, 선생님은 이성의 금광을 파내는 광부였다는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리 요샛말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군.(웃음) 운산이 노다지라고들 하지만 땅을 파야 금이 나오듯 지식 노동자 또한 세상을 직시하고 땀을 흘려야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법이지. 우리 아버지는 금광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숲(영림서)을 지키셨어요. 한 대개 월남한 분들이 극우반공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군대도 장기복무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냉전을 깨는 ‘의식화의 원흉’이 되었는지 늘 경이로웠습니다. 리 어렵게 돈을 모으셨던 외조부께서 독립군이 된 종에게 총을 맞아 돌아가셨어. 외조부께 죄송스럽게도 나는 늘 그 종의 놀라운 번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오. 한 해방 뒤 수도경찰청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은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어 독립군을 원수 보듯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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