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이북에서는 세찬으로 떡국보다 만둣국을 즐겨 먹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남쪽과 다른 환경 때문에 쌀보다 밀이 흔해서였겠지만 아무튼 만둣국에는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새해에 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만두의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진나라 때의 속석(束晳)이 저술한 <병부>(餠賦)나 송나라 때의 <사물기원>에 야담 같은 제갈공명 발명설이 나온다. 제갈공명이 맹획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는데 그때 수신(水神)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 머리 대신 만두를 비슷하게 만들어 바친 것이 효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만두는 고려가요 <쌍화점>에 쌍화(雙花)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쌍화를 고려 궁중에서는 쌍하(雙下)라 불렀고 조선 궁중에서는 상화(床花)로 호칭했다. 조선시대에도 일반에서는 만두와 상화(霜花)라는 이름을 혼용했던 모양이다. 1611년 허균이 저술한 <도문대작>에는 의주 사람들이 대만두를 중국 사람처럼 잘 만든다고 했다. 1670년께 나온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만두법과 상화법이 같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 만두는 메밀가루로 만들고 상화는 밀가루로 만드는 것으로 나와 지금의 만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1719년의 궁중 연회 기록인 <진연의궤>부터 상화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만두라는 이름이 통용된다. 재미있는 것은 사신 접대 기록인 1609년의 <영접도감의궤>에 나오는 상화에는 소에 육류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 <진연의궤>의 만두에는 꿩과 닭, 돼지고기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서울 압구정동의 ‘만두집’은 20여년째 이북식 만둣국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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