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사바사바 들러리나 서는 ‘화쟁’은 안한다

등록 2011-01-14 10:38

도법 스님은 “불교계는 예전처럼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빵 터트린 뒤 사바사바하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도법 스님은 “불교계는 예전처럼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빵 터트린 뒤 사바사바하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실상사 도법 스님에게 듣는 ‘절집’의 역할, 생명평화운동의 지혜와 원칙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34화 지리산에서 ‘도법’을 묻다

스님은 코믹했다.

“몰러…그걸 어떻게 기억해…순 거짓말이지 뭐…나도 모른다니까…아, 대충 해요…그냥 그렇게 된 거지 뭐…우씨…나도 고달파 죽겠어.” 비장하고 엄중한 질문의 고비마다 그는 허망한 답을 날렸다. 소탈하고 쿨한 그 한마디들이 좌중을 웃겼다. 그러고선 “글쎄요”라는 말로 시간을 끌었다. 진중한 답변은 그다음에 이어졌다.

오늘은 지리산 실상사 회주인 도법 스님(62)을 모셨다. 지난해 여름부터 대한불교조계종의 화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화쟁’이란 다툼을 화해시키고 사이좋게 문제를 다뤄간다는 뜻이다. 논란이 있었지만 내부의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를 수습했고, 대외적으로는 4대강 문제의 소통을 논의하다가 여당의 예산 날치기로 넋을 놓은 상태다. 그 도법 스님에게 세상의 ‘도법’을 물었다. “대책없이 꼬인 속세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합니까?”

도법 스님은 ‘생명평화운동’으로 유명하다. 2004년 3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전국 3만리를 걸은 생명평화탁발순례는 가장 상징적이다. 지리산에 20여년간 머물면서 지리산댐을 저지하고 좌우익희생자 위령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 흐름은 지금도 ‘생명평화결사’라는 연대모임으로 꽃피고 있다.

스님은 자신을 “대충주의자” “회색분자”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대충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화해하자면서도 ‘타협할 수 없는 예외’를 꼽기도 했다. 바로, 평화를 함부로 짓밟는 자들! 지리산/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홍구(이하 한) 서울엔 종종 올라오시는지요.


도법 화쟁위원회 일로 가끔 가지요.

서해성(이하 서) ‘화쟁’을 풀어서 말해보죠.

도법 조계종 새 집행부가 출범(2009년 11월)하면서 화쟁불사를 중요한 종책(宗策)으로 내세웠어요. 종단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통을 하자는 거였죠. 민족이 낳은 실천적 사상가 원효 스님의 핵심 말씀이 바로 화쟁사상이지요.

원효 스님이 말한 불일불이(不一不二)란 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1.5는 더욱 아니라는 거거든요. 좌우나 통일도 이와 같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서로 존엄성을 갖되 뜻을 모은다는 거죠. 엠비정부와 불교의 관계는 어떤가요?

도법 편을 갈라 상대방을 적대자로 보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하는 관계론적 세계관이 불교죠. 실상을 파악해 이해와 인정, 존중할 건 존중해서 평화롭게 문제를 다뤄가자는 게 화쟁의 기본사고죠. 절집 일로 봉은사 문제, 사회적으로는 4대강을 화두로 삼았지요. 아쉬움이 있지만 봉은사 문제는 나름대로 정리가 됐고, 4대강은 여당 날치기로 뒤통수를 맞았죠.

명진 스님 사건, 무엇이 문제였나

실상사 들머리에도 정부 여당을 꾸짖는 벽보가 붙어 있더군요.

도법 종단이 늘 정권에 의존적이고 끌려다니는 입장이었죠. 이웃종교로부터는 공격받는다는 모종의 피해의식이 있었고. 엠비정부 들어 몇몇 사례를 통해 그걸 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요.

봉은사 문제를 절집 안의 문제라 하셨는데, 이 일이 명진 스님과 자승 총무원장의 갈등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발단이 밖에서 된 것 아닌가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이름이 나오는 외압설 말이죠.

도법 봉은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화쟁위원회 안에 별도기구를 꾸렸습니다.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이 장을 맡고, 논의를 통해 몇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비록 종단이 정부와의 관계에서 자주적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런 외압에 의해 직영사찰을 지정하고 인사를 처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외압설은 조계종이 앞으로 어떻게 자주적으로 가느냐 하는 데서 풀어가야 할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절집이 무슨 영업장도 아닌데, 총무원 직영사찰이란 게 도대체 뭔가요?

도법 1994년 종단개혁 성과물이죠. 직영사찰이 세 군데(조계사, 팔공산 갓바위, 강화 보문사)입니다. 총무원장이 당연직으로 주지를 맡지만, 실제 주지 역할은 총무원이 위촉한 재산관리인이 하는 거죠. 94년까지만 해도 이 거대 종단의 한해 예산이 30억원밖에 안 됐어요. 직영사찰제도와 특별분담금사찰제도를 만들어서 재정을 끌어올립니다. 총무원만으로 운영하던 걸 포교원, 교육원이라는 3원체제로 가게 되죠. 갓바위, 보문사에서 올라오는 게 50억원입니다.

종단 내부에서 직영사찰이 필요하다고 해도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돌렸냐는 거죠.

도법 나도 몰라.(웃음) 갓바위가 김천 은해사 말사인데, 거기서는 직영을 해제해달라고 합니다.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숫제 공약사항이죠. 종단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30억원)이 큰데 해제하려면 대책이 있어야 하잖아요. 몇몇 사찰에 대한 직영 이야기가 나왔어요. 봉은사, 도선사(삼각산)…가령 도선사는 청담 스님 문중이거든. 반발이 세게 온 거지.(웃음)

여수 돌산 향일암, 남해 보리암, 홍련암까지 이른바 기도도량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24교구본사를 한번씩 직영으로 하면 간단한 문제 아닌가요?

24장 반대표를 얻느니, 1장 반대표를 얻는 게 낫겠죠.(웃음)

도법 총무원장은 갓바위 직영사찰 해제나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도 종회에서 부결될 거라고 봤대요. 공약이니까 논의를 부치는 거야 불가피했겠죠. 봉은사 후임 주지와 관련해 물으니 ‘명진으로 간다’고도 했고. 결과는 정반대로 가버린 거지. 갓바위는 해제 안 되고, 봉은사는 지정해버리고.

종단 차원에선 재정적으로 이익을 본 셈이니….

도법 그렇지.(웃음) 일이 세련되게 마무리되지 못한 점은 아쉽죠.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명진 스님이 편치만은 않았을 텐데, 그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또 왜곡되게 전달되면서 총무원장이 모멸감까지 느꼈다는 겁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청와대 가서 ‘소나기는 피해야지’라고 했다는 대목인가요?

도법 더 사적인…결국 뒤집은 거예요. 조계종 대세를 원장이 다 짜고 있잖아요.

가톨릭과 한기총은 접근이 안되더라

종회가 세속으로 치면 국회고 총무원은 행정부 격인데 좌지우지할 수 있나요?

도법 몰라.(웃음) 대통령도 눈 한번 껌뻑하니까 여당이 날치기해버리더만.

자승 스님이 의현 스님(94년 조계종단 개혁대상이었던 총무원장)과 다를 게 없다는 말마저 도는 실정인데.

도법 가까운 사람들은 왜 그 밑에 가서 일을 하느냐고 하긴 하죠.(웃음)

우리도 궁금했습니다.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나요?

도법 난 자승 스님 잘 몰라요. 오히려 명진 스님하고 친했지. 난 화쟁에만 관심 있어요. 좌우대립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비롯해서, 지리산에 살면 피부로 느껴요. 어떻게 공존하고 협력해가는 흐름을 만들 것인가, 그 과정에서 모색한 게 생명평화운동이었고. 종단에서 화쟁을 한다고 하니 참여하게 된 거죠. 수경 스님이 워낙 총무원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서 과정이 좀 복잡했는데, 집행부가 화쟁을 하겠다니 잘 활용해 보자고 정리했어요. 화쟁위를 통해 종단도 변화시키고 4대강도 힘 있게 다뤄가자고.

수경 스님하고는 생명평화운동을 함께 도모한 각별한 사이인데. 밀고 당기면서 긴 세월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성철 스님이 ‘청담 스님과 나 사이엔 물을 부어도 물이 안 샌다’고 했는데 도반에 관한 언사로 새겨둘 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도법 순 거짓말이지.(웃음) 우리는 바윗덩어리도 새.(웃음)

두 분이 힘을 합쳐 90년대 후반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시민단체 180여개 참여)을 만들어 지리산댐건설공사를 막아내고 있고, 새만금, 삼보일배, 5년 동안 꾸려낸 생명평화탁발순례로 이어졌습니다. 생명평화를 가꾸고 행하는 ‘생명평화결사’까지, 절집에 결사 전통이 유장한데.

도법 옛날 보조국사의 정혜결사가 정말 의미가 컸죠.

‘선정과 지혜’라고 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 화두는 절집에서 그치지 않고 속가대중들까지 두루 함께하였습니다. 오늘날 ‘결사’의 뜻은?

도법 어려운 국면에 부닥칠 때마다 등장한 게 결사운동이에요. 두개를 꼽을 만하죠. 송광사에서 일어난 보조 스님의 정혜결사, 강진 백련사 중심의 백련결사. 정혜결사는 좀 지식인 중심이었다면, 백련결사는 민중과 지식인이 하나가 된 거고. 과거에는 절집과 사회가 분리돼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 안에서 절집이에요. 가령 지리산 문제가 실상사와 분리될 수 없는 거죠. 사회와 함께하는 모색은 당연한 거죠. 종교·이념·지역·세대의 벽을 넘어서서 할 수 있는 해답으로 정리된 게 ‘생명평화’였지요.

좌우대립을 생명평화운동의 큰 과제로 꼽았는데, 과거가 아니라 현실 문제로 좌우대립이 지금 심각한데 화쟁위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지요?

도법 좌우대립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걸 녹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데 화쟁위가 고리가 될 수 있죠. 첫 의제를 4대강으로 잡으면서 범종교계 차원에서 공조했으면 싶었어요. 엔시시케이(NCCK,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원불교는 뜻이 곧 들어맞았는데, 가톨릭과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미처 안 됐어요. 암튼 세 교단이 4대강 논의를 하다가 날치기 예산통과로 뒤통수를 맞았죠. 그 과정에서 보니, ‘정부 들러리 서는 결과 오지 않느냐’는 등 불신이 높더라고요. 조계종단의 친정부적 면모나 정부에 약한 경향이 있으니 그랬겠죠. 뭘 한다 빵 해놓고 뒤에 가서 사바사바하고 그랬잖아요. 총무원장한테도 ‘공감과 지지를 기초로 대중 신뢰를 받는 종단으로 가려면 이번만큼은 말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날치기 당하면서 템플스테이 예산 깎인 걸로 종단이 성난 듯이 부각이 돼서 체면이 말이 아니죠.

스님이 정부에 대고 ‘불교계를 원숭이 다루듯 하냐’고도 했죠.

정부 지원예산 따위 연연하지 않을 것

도법 과거에는 종교편향 같은 일이 일어나면 ‘사과하라’고 한 뒤 적당한 과정 거쳐 사과 받고 지원 따내고 넘어갔단 말이에요. 이번엔 달라요. 정부에 대해 사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 길을 가겠다는 겁니다. 지원예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3년 불사를 10년 걸려 하더라도 말이죠. 다른 하나는, 사회통합 흐름을 만들어보겠다고 화쟁위를 통해 공을 들여왔는데 이걸 함부로 취급한 정부와 여당은 양아치 노릇을 했다 이거죠. 그 부당한 처사를 종도들에게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야단치는 작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거죠.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 생명 존중과 불살생인데, 군대와 전쟁은 그 가르침과 정면으로 부딪치잖아요. 가령 군승 문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종교가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도법 서산 스님은 활인검 이야기를 했죠. 죽이는 칼이 아니라 살리는 칼이라는 거죠.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건 불교가 어떤 체제를 위한 종교일 순 없어요. 사람, 중생, 생명을 위한 게 아니라면 거기 맞춰 복무하는 건 불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불살생보다는 호국불교를 더 많이 배웠죠.

도법 어려운 문제입니다. 부처님 사상을 역사현실 속에 잘 적용한 사례를 든다면 마하트마 간디가 아닐지.

4대강은 근원적인 생명 문제입니다. 땅도 생명, 물도 생명, 거기 사는 물고기도 생명인데 생명파괴가 명백하죠. 절집에서 흔히들 만인불성이라고 하는데 파괴자들한테는 어떤 불성이 있는지요.(웃음)

개한테도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엠비한테도 불성이 있을까요?

도법 간디가 그런 문제를 다뤘잖아요.

그런 좋은 경우로는 이번에는 답이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요.(웃음)

도법 우리도 좋은 사람 돼야지.(웃음) 불교 사유방식으로 보자면 삼라만상이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하죠. 개한테도 불성이 있고 대통령에게도 불성이 있겠죠.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는지요. 4대강에 들러붙은 토목귀신들까지 나대고.

도법 존재 자체는 거룩한 성품을 가졌는데 현실에선 달리 나타나는 게 문제죠. 어쩌겠어요. 버릇을 고치는 수밖에.(웃음) 얼음덩어리를 제아무리 잘게 부숴도 세수나 빨래를 할 수는 없어요. 녹이는 수밖에. 거룩함이 정상적으로 발현되거나 작동되지 않으면 뭐겠어요? 병이 든 거죠. 이명박은 환자예요.(웃음)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중심, 권위적, 독선적으로 삶을 바라보면 다 병이고 환자라는 거죠. 무지, 왜곡…미워하고 화낸다고 해서 치유되겠냐 이거죠. 진정한 애정과 따스한 살핌을 통해 고쳐가야죠. 이런 것에 대한 새로운 눈뜸과 발견을 끌어내자는 게 생명평화운동입니다.

얼마 전 직설에서 김인국 신부가 ‘명동성당이 순복음교회가 돼간다’고 우려를 했는데, 요즘 조계사 산문이 대중을 위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고난받는 이들의 피난처가 됐거든요. 농성도 하고, 숨어들기도 하고, 정치적 의사도 표현하는 공간이 됐는데.

왜 절집이 너그러워졌을까요? 명동성당은 문을 닫았는데.

도법 똑똑해진 거죠. 세상을 좀 알고 정신을 더 차린 거죠.

<조선일보>식으로 제목을 뽑으면 ‘도법스님, 가톨릭 맹비난!’(웃음)

올해가 대장경 초조 1000년입니다. 대장경은 앞으로 1000년 뒤에도 남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오늘 하고 있는 일 중 무엇이 1000년 뒤에 남을까요?

도법 지금 여기서 ‘이게 옳다, 이게 참되다, 이게 바람직하다’고 하면 깜냥껏 최선을 다해 그냥 하는 겁니다. 그러면 천년만년 갈 것이고, 딴 욕심 있으면 턱도 없고.

대장경이 좋은 까닭으로 뭇 스님들이 인쇄(조각)공이 된 일을 꼽고 싶습니다. 목판을 찍으려고 판 것이지 구경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죠. 대중사업인 거죠. 여러 갈등을 뛰어넘어 생명·평화에 바탕해 뜻을 일궈낸다면 ‘결사’가 천년 가는 길을 열지 말란 법이 없겠지요.

도법 대장경의 가장 큰 중심은 국론통합에 있었다고 봐요. 몽골 침략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상황에서 지배이념인 불교가 국론을 모아낼 수 있는 근거로 장경을 만들었죠. 우리 시대에도 그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하죠. 이게 시대정신입니다. 현대사회니까 첨단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겠죠.

연평도에 들어가 기도순례를 했다면…

마침 엠비도 국론통합을 몹시 강조하긴 하는데 스님이 말씀하시는 통합과는 크게 달라 보입니다. 화쟁위 입장에서 볼 땐 어떤 방법이 있는지?

도법 세상일은 누군가 철든 사람이 바람직한 물꼬를 터가야 한다고 봐요. 진보가 스스로 좀 철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자신에게 해가 되고 힘들다 해도 철든 이가 먼저 손 내밀고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게 맞죠. 남북관계에서는 남측이 힘도 있고 철도 더 들었으니 의젓하게 믿음을 줘야 하구요. 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라면 각론에서는 달라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데 합의해야 합니다. 그 길을 막거나 짓밟으면 그걸 쳐내야 하지만, 죽으나 사나 평화롭게 가야 합니다.

도의조사(조계종조)가 연 선불교 전통은 개창 때부터 사회모순과 맞서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때문에 도의는 당장은 세상에서 버림받았습니다. 생명평화가 그 맥을 이어가야겠지요. 4대강 문제, 남북 갈등 등이 생명과 평화로 자리잡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법 연평도 사건 터졌을 때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이럴 때 섬에 들어가서 생명평화기도순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천명, 만명 움직이면 남북 모두에 큰 울림이 되지 않았겠어요? 생명평화 문제를 생명평화 방식으로 다뤄가는 면에서 자신감이나 실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산 아래를 향해 새해 한 말씀을.

도법 나도 고달파 죽겠어.(웃음) 세상 이치를 보면 반드시 노력한 만큼 실현된다고 봅니다. 욕심만큼은 안 되겠지만. 평화롭게 살고 싶으면 스스로 평화의 조건을 만들고 평화의 힘을 기를 수밖에 없겠죠.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어요.

■ 직설잔설

‘돈맹이 할아버지’

도법 스님은 자꾸 ‘몰러’를 연발했다. 누구였더라, 전에 인터뷰를 할 때 정겹게 ‘몰러’를 연발했던 분이…. 지리산에서 서울로 돌아와서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터넷에 뜬 ‘돈맹이 할아버지’의 부음기사를 보고 아차 했다. 2006년 10월 국정원 과거사위 일로 인터뷰하러 갔을 때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난다며 할아버지는 ‘몰러’를 연발하셨다. 판사를 그만둔 이유를 여쭙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라고 하셨다. 판사 월급으로는 20일 정도 지나면 쌀이 떨어져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쌀로 연명했는데, 이제 그게 끊기니 도저히 생활이 안 되겠더라는 것이다. 인권변호사의 맏형은 그렇게 변호사가 되었다. 김지하 사건부터 시작해서 주요 시국사건, 공안사건의 변론은 거의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서해성, 도법 스님, 한홍구.
서해성, 도법 스님, 한홍구.
어른이란 계셔 주신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돈명 변호사는 해방의 감격 속에 민립대학으로 만들어진 조선대의 1회 졸업생이었다. 조선대를 꿀꺽한 박철웅이 쫓겨난 뒤 그는 모교의 총장이 되어 4년간 조선대의 정상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총장 임기를 마친 71세의 노변호사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덕수에서 어른을 모셔갔다. 돌아가실 때까지 덕수의 대표변호사로 계시면서 사무실에 나오셔서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셨다니 김형태, 이석태 두 변호사가 어른을 끝까지 참 잘 모셨다. 큰 어른이 계셨기에 덕수는 인재의 산실이었다.

한겨레에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연재할 때 돈맹이 할아버지는 서해성 편에 놀러 오라고 하셔서 된장찌개를 두어번 사주셨다. 너무 큰 영광이고 과분한 격려였다. 지난달 리영희 선생님이 떠나가시고 해가 바뀌더니 큰 어른이 또 돌아가셨다. 한평생을 국가보안법과 씨름하신 분들을 국가보안법보다 먼저 장례 치러야 하다니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한홍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