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미국 전투기가 독일 기차를 집요하게 추격하며 기총소사를 했다. 조종사는 기차 안에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미군 포로들이 갇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열흘의 호송 끝에 포로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그들은 안도했다.
그중에 시드니 모나스가 있었다. 독일어가 능통한 그는 독일인들과 이야기하면 러시아계 유대인임이 알려질까 두려워 독일어를 모르는 체했다. 그러나 포로 한 명이 고열로 쓰러지자 어쩔 수 없이 독일어로 간수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그 뒤 모나스는 포로와 간수들 사이의 통역을 맡았다. 독일 장교 하나가 통역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유대인이라 신뢰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부인했다.
이제는 은퇴한 학자인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텍사스대학교에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넘나들며 폭넓고도 깊이를 잴 수 없는 강의로 학생들을 매료시켰던 그는 6년 동안 권위 있는 학술지 <슬라빅 리뷰>의 책임 편집자를 맡기도 했다. 유대인이면서도 시오니즘에 반대하여 다른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이 그가 번역한 판본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저작을 번역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도 말한다.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에 몰두하기엔 그의 관심사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숨은 인재들을 서방에 알리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노학자가 아직도 자신의 ‘죄와 결함’ 때문에 회한에 시달린다. 자신의 정체를 부인한 그 한 번의 일 때문에.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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