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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미국과 중국 / 정남기 논설위원

등록 2011-01-19 21:11수정 2011-01-20 11:37

유레카
한국에서 직접 전쟁을 치른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1970년대 초반까지 극도로 경직돼 있었다. 상호 교류나 방문은 물론 외교적 접촉도 거의 없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1954년 인도차이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네바 회담이었다.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외교부장은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덜레스는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중국 대표들 근처에 앉는 것도 거부했다. 철저한 무시와 봉쇄 전략이었다.

변화의 계기는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과 다음해 발생한 중-소 분쟁이었다. 분쟁이 격화하면서 미국이 이 틈을 비집고 들었다. 메신저 노릇을 한 사람은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거 스노였다. 이어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중국 비밀방문을 거쳐 72년 2월 중국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좌파 탄압에 앞장섰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중 화해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 사건에 불과했다. 두 나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당사자는 덩샤오핑이었다. 마오쩌둥 사후 강경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그는 1979년 초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이어 같은 해 터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두 나라 관계를 더욱 밀착시켰다. 미-중 관계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마다 그 배경에는 소련의 패권주의가 있었던 셈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8~21일 미국을 국빈방문하면서 두 나라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무성하다. 실제로 덩샤오핑의 미국 방문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은 이미 무너졌고, 미국도 금융위기 이후 그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양대 강국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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