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국제 원유가격이 리비아 사태 등의 영향으로 배럴당 100 달러를 찍었다. “온갖 물건이 다 올라 10만원 들고 가서 살 게 없다”는 마당에 유가 상승은 ‘설상가상’인 격이다. 환율이라도 떨어지면 원유 수입가격이 좀 낮아지겠지만 불안심리를 반영한 환율은 반대로 가파른 오름세다.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도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지만 그때는 원-달러 환율이 920~930원대여서 1120원대인 요즘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물가고통은 지금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모든 정부는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시장은 정부가 아주 중요한 참가자란 점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현 정부의 환율 정책은 강만수-최중경 콤비가 처음 틀을 잡아 놓은 성장 및 수출 촉진용 고환율 정책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요즘 물가 때문에 주춤하지만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고환율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했다고 전한다. 2008년 1월에 비해 여전히 18% 절하(환율 상승)된 원화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정부의 자랑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환율은 부의 이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때문에 미-중의 신경전에서 보듯 국가간에 벌어지는 경제적 갈등의 주요한 축이 환율이다. 한 나라 안에서 환율정책은 ‘보이지 않는 분배정책’이다. 환율의 수준이 경제주체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7~2008년 자료로 조사한 결과, 환율이 높을 때 혜택을 보는 기업은 전자, 자동차 등 수출 위주의 16개 기업에 불과했고, 건설 등 241개 내수산업은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대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과 내수, 자영업의 부진, 그리고 서민의 물가고통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정부 안의 고환율론자들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면 투자도 늘리고 고용도 늘려 결국 국민 전체가 혜택을 볼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출과 투자의 연결고리는 2000년대 들어 약해지고 있음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실재 수출 대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은행에 쌓아놓을 뿐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하청업체와의 공정한 거래를 주문하자 대기업들은 ‘왜 팔을 비트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고환율 정책 하나만으로도 대기업들한테 서비스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봉현/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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