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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장자연 / 함석진

등록 2011-03-07 19:58

니체의 말대로 과연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까? 우린 그 선물을 받지 못한 이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 깨알같이 적어둔 일기장처럼 그가 살아온 모든 날의 일상이 그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7년 전 6월5일에 뭘 했는지를 물으면 오후에 비가 그쳐 장보러 갔는데 마침 돈이 모자라 감자를 못 샀다고 대답한다. 2006년 한 과학잡지에 논문이 실리면서 알려진 질 프라이스라는 실제 여성의 이야기다.(<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2009년) 그가 얼마나 생을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는 남편을 잃은 고통으로 매일 아침을 맞는다. 그가 살아온 날들의 기쁨도, 몇 년의 시간도 소용이 없다. 극심한 고통은 그것 하나로도 족하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기억의 자멸을 유도하는 망각장치를 그래서 따로 설계도에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망각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나쁜 기억만 골라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감신경 억제제 같은 약으로 일부 아픈 기억을 지우는 실험(미국 하버드대)도 있었고, 단백질 효소를 이용해 쥐의 특정 기억만 골라 지우는 ‘선택적 기억 제거’ 방식(미국 조지아대 뇌행동연구소)도 등장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코드를 컴퓨터 파일처럼 척척 만지는 날이 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직 그것은 신의 관할인 듯하다.

장자연씨는 고통과 수치의 기억을 지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끝내 제 몸을 지웠다. 정작 ‘망각의 장치’를 찾은 것은 우리다. 그의 죽음을 보고 분노를 토했던 우린 슬그머니 잊어버렸다. 그가 기억의 저편에서 2년 만에 다시 살아왔지만, 돈과 권력의 세상은 여전히 완강해 보인다. 죽어서도 고통을 풀지 못하는 세상, 너무 슬프지 않은가.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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