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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수렴청정

등록 2011-05-22 19:09수정 2011-05-22 21:26

발(垂簾)을 쳐놓고 왕을 대신해 정무를 본 최초의 인물은 당나라 측천무후다. 그 전까지는 태후가 섭정을 하더라도 황제와 나란히 앉아서 신하들을 접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측천무후가 황제 의자 뒤편에 발을 설치해놓고 앉은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병약하다고는 하지만 남편(고종)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별로 떳떳하지 못한데다 황태자까지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발은 정상적으로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없는 형편에서 나온 일종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수렴청정할 때 수렴을 설치하는 장소, 앉는 방향과 위치 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송나라 때는 황제와 태후가 수렴 안에 함께 앉았는데 황제가 왼쪽, 태후가 오른쪽이었다고 한다. 태후가 황제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는 처음에는 침소인 충순당 창문을 열고 발을 내려놓은 채 왕과 신하들을 접견했고, 뒤에 편전으로 장소를 옮긴 뒤에도 왕은 수렴 밖에 있었다고 한다.

강력한 수렴청정을 펼친 여성들에 대한 훗날 사가들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악랄한 인물로 묘사되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명종실록>에는 문정왕후에 대해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서경>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라고 하였으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낸 여걸들이었다. 측천무후는 훗날 친히 제위에 올라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가 됐고, 서태후가 1861년 신유정변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은 불과 스물일곱살 때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황우여 원내대표의 단독회동 뒤 수렴청정 논란이 시끄럽다. 박 의원이 언제 수렴을 걷고 밖으로 나올지 모두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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