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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나의 육아쇼핑 탈출기/ 김은형

등록 2011-05-22 19:17수정 2011-05-22 21:22

김은형 경제부 기자
김은형 경제부 기자
얼마 전 오랜만에 인터넷 쇼핑을 하느라 며칠 동안 ‘폭풍검색질’에 빠졌다. 쇼핑 아이템은 유아변기. 그깟 몇만원 하는 플라스틱 변기를 사려고 폭풍검색씩이나 하냐며 핀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육아용품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모르고서 하시는 말씀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가지면서 진입하는 새로운 세계가 높고 깊은 모성의 세계만은 아니다. 방대한 쇼핑의 세계가 하나 더 있다. 배냇저고리부터 유모차까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필요한 물건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는 물려받기도 하지만 둘째가 아니고서야 물려받기 쉬운 일도 아니고 한두가지 사다 보면 ‘이걸 쓰면 더 편할 텐데’ ‘이걸 입히면 더 예쁠 텐데’ 등등 욕심이 늘어나면서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임신 6개월 때부터 약 1년 동안 나도 인터넷을 통한 육아용품 쇼핑에 빠졌다가 ‘도망치듯’ 빠져나온 경험이 있다. 돈이 많이 들어가서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브랜드와 정보와 사용후기 사이에서 멀미를 앓은 탓이다.

한국의 육아용품 시장은 다른 생활용품 시장과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일단 수입 브랜드가 많다. 기저귀나 일부 위생용품 등을 빼면 라이선스나 직수입 등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국내 업체들도 거의 모두 외국산 수입을 병행하고 있고, 유모차처럼 값비싼 용품은 회사 전체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입제품 의존도가 높다. 또 하나는 온라인 유통의 정글이다. 기저귀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오픈마켓이라는 건 알려졌지만 오픈마켓을 빼놓더라도 무수한 육아 관련 카페에서 매일 ‘직구’(직접구매) ‘공구’(공동구매) 행사가 벌어진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건 정식 수입되지 않은 브랜드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유한킴벌리가 ‘더블하트’라는 브랜드로 정식 수입하기 전에 유통되던 일본 육아용품 브랜드 ‘피죤’처럼 때로는 비공식 수입제품이 인기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밥숟가락, 변기 하나 살 때도 검색을 하다 보면 듣도 못한 브랜드와 제품들이 수십개씩 주르륵 뜬다.

처음엔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싸게 사겠다’는 생각으로 몇날 며칠을 샅샅이 뒤지며 클릭해대다가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너무나 피곤해졌다. 며칠 동안 고르고 골라 5만원짜리 물건을 5000원 싸게 사고 좋아라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문득 한심함마저 밀려왔다. 그래서 용품에서 장난감으로 관심사가 옮겨질 때쯤 아예 쇼핑을 끊어버렸다. 용품보다 더 방대한 장난감 목록을 뒤지다가는 쇼핑의 바다에서 익사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번 변기 구매처럼 가끔씩 검색병이 도지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제품이 아니고서는 사이트나 카페에 들어가는 것도 피하게 됐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안티소비, 왜 주목해야 하나?’ 보고서를 보면 나처럼 쏟아지는 제품 정보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한겨레> 5월12일치 13면 참조) 특정 기업이나 소비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어 쇼핑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넘쳐나는 상품과 정보의 피로감 때문에 염증을 느끼고 포기하게 되는 사람들도 ‘안티소비’의 한 부류를 이룬단다.

조금 갈래는 다른 이야기지만, 이 글을 보면서 문득 최근 주요 백화점들을 웃게 만든 샤넬백 사재기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5월 초 샤넬이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자 4월에 백화점마다 인기 제품이 동나버린 것이다. 3초 만에 하나씩 보인다고 해서 ‘3초백’이라고 불리는 루이뷔통의 ‘스피디’에 이어 몇년 사이 인기상승 중인 샤넬 클래식백도 조만간 ‘5초백’이나 ‘10초백’으로 등극할 것 같다. 그만큼 보는 이들을 진력나게 할 거다. 넘치는 정보량으로 ‘안티소비’를 자극하는 건 몇천원짜리 잼이나 몇만원짜리 육아용품뿐 아니라 수백만원짜리 명품백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김은형 경제부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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