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할 통신요금 인하 방안에 ‘휴대전화 블랙리스트’ 전환이 포함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로 바꾸면 소비자 부담이 덜어진다는데, 그 말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블랙리스트란 말에 담긴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영국 청교도혁명 때 처형당한 찰스1세의 아들 찰스2세가 1660년 왕정에 복귀하면서 아버지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만든 데서 비롯했다. 찰스2세는 이들 중 13명을 처형하고 25명을 종신형에 처하는 보복을 했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5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연기자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노동운동 참여자나 의료소송 제기자도 기업이나 병원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국내에선 1934년 1월16일치 <동아일보>에 사상범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청년 2명이 체포됐다는 기사가 처음 나타난다. 지난해 방송인 김미화씨가 <한국방송>에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폭로해 그 말에 음습함을 더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세계에서는 쓰이는 맥락이 다르다. 그동안 국내 이통사는 단말기 고유 식별번호(IMEI)가 사전에 등록된 경우에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을 써왔다. ‘블랙리스트’ 방식은 아무 전화기에다 범용개인식별장치(USIM)만 꽂으면 작동하도록 하고, 도난·분실 등 문제 있는 단말기만 서비스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한국을 빼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블랙리스트 방식을 쓴다. 이 방식을 쓰면 이통사와 약정을 맺고 휴대전화기를 살 필요가 없다. 값싼 단말기를 구해 쓰거나 중고 단말기를 재활용하는 데에도 불편이 없다. 이통사 영향력은 줄고, 소비자 선택권은 넓어진다.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그 말에 덧씌워졌던 오명을 벗는 첫 사례가 되기도 할 것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