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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경쟁 신화’ / 곽병찬

등록 2011-06-13 19:14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일 아침거리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이웃보다 더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다.” 경쟁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병증을 꼬집은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그는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부추기는 경쟁과 일중독을 비판했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선택 혹은 적자생존을 경쟁에서의 성공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가깝다. 생물의 궁극적 성공을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상호부조와 공생 등의 전략을 통해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다.”

경쟁은 인간 본성이라는 규정은 지배층이나 관리자들에 의해 애용됐다. 기득권 구조를 공고히 하는 그 속성에 따른 것으로, 이들은 아예 경쟁을 교육제도의 뼈대로 삼았다. ‘리틀 엠비’로 불리던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초등생부터 경쟁을 가르쳐야 한다고 설교했다. 교육학자 앨피 콘이 ‘경쟁은 학습된 것이지 본능이 아니다’라고 했던 까닭이다.

흔히 경쟁은 생산적·효율적이라고 하지만, 그건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남을 누르려고 애쓰는 것’을 혼동한 결과라고 콘은 말한다. 경쟁은 이기려고 애쓰는 것일 뿐 잘하려고 애쓰는 것과는 다르다. 잘하려고 하거나 목표 달성을 위해선 협력이 유리하다. 경쟁이 불가피한 이유로 꼽히는 ‘희소성’도 실은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심리적(혹은 욕망) 혹은 분배의 문제다. 설사 물자가 부족해도 “경쟁하여 획득할 것이냐, 협력하여 나눌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필요로 하는 재화의 실제 공급량이 아니라, 사회가 경쟁이나 협력 중 무엇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말했다. ‘경쟁=본성’이라는 등식은 세뇌된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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