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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악마가 마신 위스키 / 김용익

등록 2011-09-19 19:19

김용익 서울대 교수·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김용익 서울대 교수·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생산가능인구가 2050년 63%로 준다
나라 위기를 구할 교육은 버려두고
관심사는 온통 입시에 매달려 있다
위스키가 ‘스코치 위스키’인 것은 싹튼 보리를 훈연할 때 그 지역에서만 나는 독특한 토탄의 연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토탄 연기로 위스키에는 황량하면서도 그지없이 아름다운 스코티시 무어의 향기가 배어든다. 이 첫 과정 다음에 몇 단계를 더 거쳐 만들어진 원액은 오크통에 담아 표준 12년을 숙성시킨다.

신기한 것은 이 시간 동안 밀봉된 원액의 2% 정도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것을 천사가 몰래 훔쳐 마신 것이라 하면서 ‘천사의 몫’이라는 즐거운 이름으로 부른다. 문자 그대로 2% 부족해지는 것인데 천사의 입술이 닿은 다음에야 위스키는 위스키가 된다.

어젯밤 갑자기 날씨는 추워지고 다시 입시철이 왔다.

수도권 대학의 수시 지원자는 104만명, 경쟁률은 사상 최고인 33.28 대 1이다. 수시와 정시를 합쳐 전국의 4년제 대학은 입학전형료로만 2500억원을 벌 것이라 한다. 이 전형료를 내기 위해 쓴 사교육비는 21조원이다. 공교육비가 81조원 정도이니, 공·사교육비를 합친 전체 교육비의 20% 정도가 사교육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를 거쳐 어느 대학에 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눈으로 보면 허무한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갑 대학에 갈 학생이 어쩌다 을 대학에 가는 것은 나라의 입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니다. 갑 대학에서 가르칠 경제학을 을 대학이라고 못 가르칠 리 없지 않은가?

대학과 학생, 학부형들이 목을 매고 매달리는 대학입시의 변별력이라는 것도 나라의 입장에서는 어수룩한 것이 좋다. 그래야 대학간 격차가 줄어들 테니까. 1점의 칼날 위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무의미함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그보다는 대학의 이념과 교육방침에 맞는 학생들을 융통성 있게 고르는 것이 좋다. 이런 융통성을 이른바 일류대학들이 특목고 학생들을 몰아가는 데 악용만 하지 않으면 말이다.

이 허망한 게임에 몰려 정작 중요한 교육의 과제들은 땅속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2010년 3561만명에서 불과 40년 뒤에는 2242만명으로 줄어 63%밖에 남지 않는다는 엄중한 인구학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반면 노인인구는 536만명에서 1616만명으로 늘어난다. 2050년 인구의 38.2%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번뜩이는 창의력을 불어넣고, 위태로운 사춘기를 무사히 넘겨 한명이라도 더 쓸모 있는 어른으로 키워내고, 지식과 기술이 낡아가는 40∼50대에게 대대적인 평생교육을 하지 않고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창의력 교육, 사회성 교육, 평생교육은 어디로 갔는가?

사회와 산업이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는 도외시하고 대학이 가르치기 편하고 돈이 남는 학과만 늘려가면서 대학진학률은 79%로 높아졌다. 전문계 고교에 들어가 대학을 못 가면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교육을 혁신하지 않고 청년실업률이 높다고 한탄만 할 일인가? 인적자원 개발은 어디로 가고,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은 어디로 갔는가?

정작 나라의 위기를 구할 중요한 교육과제는 다 버려두고 교육당국과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대학입시에 매달려 있다. 교육은 대학입시에 피를 빨린다. 몇개 일류대학과 몇개의 특목고와 강남 학부모가 벌이는 미친 노름에 온 나라가 고통받고, 백년대계라는 교육은 한치 앞이 어둡다.

오크통 속의 위스키는 2%를 천사가 마신다는데 우리의 사교육비는 누가 마셨을까? 어이없이 날아간 총교육비의 20%, 20조원. 설마 천사가 마셨을 리는 없다. 악마가 마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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