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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한나라당 쇄신파, 헛심 쓰고 있다

등록 2011-11-07 19:27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한나라당 쇄신파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마지막 기회’라며 엊그제 들고나온 국정 쇄신 방안은 형식부터 파격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기자회견을 한 뒤 서명 의원 명단이 첨부된 연판장을 청와대에 직접 전달했다. 내용은 더욱 매섭다.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747공약 폐기 등을 요구했다. 대통령을 정면으로 치받는 모양새가 이번에는 뭔가 사달을 내고야 말겠다는 기세다.

이번 쇄신운동은 18대 국회 들어 벌써 다섯번째라고 한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올해 4·27 재보선 참패 등 정부여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쇄신을 주창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나곤 했다. 이번에도 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다. 당장 청와대도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당내에서도 다수의 지지를 못 받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쇄신운동이 매번 좌절됐던 것은 아니다. 2004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표가 주도한 이른바 ‘천막당사 쇄신’은 대박을 터뜨렸다. 박 대표는 당 대표로 당선되자마자 그다음날부터 기존 당사를 버리고 천막당사로 출근했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양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당은 그해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121석이라는 예상 밖의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기사회생했다. 여세를 몰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하며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왜 또다시 절박한 심정으로 쇄신을 부르짖게 됐을까. 직접적으로는 ‘오만’과 ‘불통’으로 상징되는 이 대통령의 실정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무기력과 무책임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이고 근시안적인 분석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아무리 쇄신을 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본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속성상 근본적인 쇄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에서 보수우익 기득권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정치적으로는 친미반북 세력, 경제적으로는 재벌과 중산층 이상의 자산계층을 대변한다. 지역적으로는 박정희 정권 이후 굳어진 영남 기득권층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계층의 이익 대변을 중단하는 순간 한나라당은 존립 기반을 잃게 된다. 결국 아무리 쇄신을 한다 해도 한나라당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한나라당의 뿌리를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나라 보수우익 정당은 해방 직후 설립된 한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5년 9월 창당한 한민당은 일제에 협력한 관료와 지주, 기업인 등이 주축이었다. 그들은 출신 배경상 농지개혁이나 친일파 숙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좌우합작과 토지 유상매수 무상분배에 반대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6·25를 거치면서 극우 성향은 더욱 강화됐다.

한민당은 이승만과 갈라서는 등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맥은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김영삼의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을 거쳐 지금의 한나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한나라당이 남북화해에 나서고, 부자증세하고, 재벌개혁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그건 보수우익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딴나라당’이 된다. 그런데도 쇄신파 의원들은 이를 아주 결연하게 요구하고 있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천막당사’ 때처럼 쇄신운동이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은 생존을 위해 잠시 본색을 감춘 위장에 불과했다. 위장막이 벗겨진 본래 모습을 지금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10·26 재보선 참패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리자 쇄신파가 또다시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당명까지 통째로 바꾸는 쇄신을 한다 해도 늘 그랬던 것처럼 머잖아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우익 정당으로 되돌아갈 게 뻔하다. 쇄신파들은 결과적으로 그토록 변화시키려 했던 한나라당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하고 있다. 결국 도돌이표가 될 쇄신에 헛심만 쓰면서. 쇄신파는 자신들이 진정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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