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한 일간지에 ‘조건만남’을 다룬 기사가 제법 크게 실렸다. ‘채팅 사이트에 조건만남 클럽을 개설하고… 변태적인 집단 성매매를 알선한 카페 운영자와 성매수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회원들 중엔 의사와 약사, 교수 등 사회 지도층 인사가 다수 포함됐으며….’ 이 기사를 훑어 내려가며 읽던 중 혀 끌끌 차게 한 대목을 만났다. 경찰 수사 개요에 등장한 이들의 ‘조건’을 시시콜콜하게 밝힌 내용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마뜩잖은 부분을 보면서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겹쳐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 ‘민중 속으로’라는 브나로드 운동이 벌어질 때 나온 작품이 뜬금없이 생각난 건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지도층’의 뜻을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끌 만한 위치에 있는 계층’이라고 풀어놓았다.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는, 이른바 계몽이 절실했던 ‘농촌계몽시대’에나 씀 직한 표현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지도층 인사’라는 표현을 안 쓰면 좋겠다. 나는 그들에게 지도받은 적 없고, 지도받을 생각도 없다.” 얼마 전 만난 한 출판인의 말이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이 적지 않을 거다. 기사에 나온 의사, 약사, 교수 등은 ‘사회 지도층’이 아닌 ‘전문직(종사자)’이다. 경우에 따라 ‘유력인사’, ‘저명(유명)인사’, ‘권력층’, ‘고위층’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인기 가수, 인기 탤런트, 인기 아나운서 따위의 표현도 ‘지도층 인사’처럼 곱씹어볼 말이다. 인기는 객관적인 표현이 아닌 까닭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 아무개의 교통사고 사건을 조사중인…’(ㅎ신문), ‘인기 가수 아무개가 타고 다녀 유명한…’(ㅁ일보), ‘인기 영화배우 겸 가수인 아무개…’(ㅅ일보)에서 ‘인기’라는 표현을 덜어내면 어떨까. 굳이 써야 한다면 ‘인기’ 대신에 ‘유명’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널리 알려져 있다고 모든 이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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