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관옥 사회2부 호남제주팀장
‘난장이’들은
여전히 힘없이
당하고 있다
더 교묘하게…
여전히 힘없이
당하고 있다
더 교묘하게…
지난 18일 광주기독병원 재활병동. 석달 전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쓰러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실습생 김민재(18)군을 찾아갔다. 그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을 거쳐 재활의학과 6인 병실로 옮겨져 꿈꾸듯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그는 애초 키 184㎝, 몸무게 70㎏의 건장한 체구였다. 이마가 훤칠하고 코가 오뚝한데다 성격이 활달해서 누구한테나 호감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조장치를 달아 목으로 숨 쉬고, 코로 먹으며 버티고 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해 허리엔 욕창이 생기고, 핏줄조차 찾기 어려워 발가락에다 주사를 맞는다. 왼쪽 머리엔 지름 10㎝가량이 함몰된 수술 자국이 남았다.
그를 만나러 간 것은 아버지 김영호씨와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김군 사건이 터지자 이곳저곳 수소문한 끝에 아버지 김씨와 통화했다. 김씨는 “반짝 관심은 싫다”며 말문을 열지 않았다. 꼭 지켜보겠노라고 했다. 당시 김씨한테 전해들은 상황은 1970년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 속에서도 난장이의 아들 ‘김영호’는 “우린 맨 밑야요. 우리에겐 잡아먹을 것이 없어요”라고 분노했다. 현실과 소설에서 우연히 겹친 ‘김영호’라는 이름은 묘한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기아차 실습생 김민재군 사건은 껍데기를 한풀 벗겨낸 우리 사회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농어촌 실업고 학생인 김군이 겪은 악몽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노동과 의료의 사각지대를 한꺼번에 들춰냈다.
김군은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꽂혔다. 고향에 있는 영광실고 자동차과에 들어갔고, 3학년 때 기아차 광주공장으로 실습을 갔다.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여러 공정을 배울 기회는 없었고, 정규직조차 기피하는 페인트공정에 붙박이로 배치됐다. 미성년인 그는 하루 10시간, 일주일 평균 54시간을 일했다. 심지어 72시간을 넘게 일한 적도 있었다. 넉달 내내 혹독한 중노동에 내몰린 그는 특근과 잔업을 되풀이하다 마침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가 기숙사에서 쓰러진 날은 연말 분위기가 한창인 지난해 12월17일 토요일 저녁 8시쯤이었다. 50m 떨어진 소방서에서 119가 불같이 달려왔다. 구토·두통 등 뇌출혈 증세를 보인 그는 운 나쁘게도 반경 10㎞ 안의 병원 3곳을 도느라 5시간40분을 까먹고 말았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전남대병원은 2시간 넘게 그를 대기시키더니 병실이 없다며 등을 떠밀었다. 방치된 그는 다음날 새벽 1시40분 수술대에 올랐지만 뇌세포의 80%가 손상되는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석달이 지났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노동부는 부랴부랴 기아차 실습생 128명의 근로실태를 점검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다며 과태료 3억여원을 물리는 데 그쳤다. 형사처벌은 흐지부지 미루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병원을 전전한 이유를 서면으로 조사했다. 당연히 환자 이송이나 당직 근무의 잘못을 찾아내지 못했다. 병원 안팎에 파다한 “수술을 빨리 받는 것도, 늦게 받는 것도 운”이라는 속설을 확인했을 뿐이다.
정부나 정당이 실업고 실습생 제도 개선, 119 안전신고센터와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통합, 응급수술전담팀 배치 등 대안을 찾으려 애쓴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틈에 기아차는 슬그머니 김군이 기숙사에서 쓰던 물건들을 빼내 가족들에게 보내왔다.
이를 보면서 2012년이 조세희가 소설을 썼던 1970년대보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낙원구 행복동에서 쫓겨난 난장이들은 여전히 힘없이 당하고 있다. 더 교묘하게, 더 끔찍하게….
안관옥 사회2부 호남제주팀장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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