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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순자와 명자의 수난시대 / 이창근

등록 2012-04-05 19:11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지난여름 나는 김진숙을 사랑했다
2012년 4월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김순자와 유명자가 그들이다
봄이다. 모든 것이 땅 위로 존재를 드러내려 애쓰고 낡은 것은 자연히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 이들이라면 이름 짓기가 여간한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한창 진행중인 총선에서 슬로건을 정하는 것만큼이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마련인 이유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여자 이름에 ‘자’(子)가 많이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당시 일본 이름이 직수입되면서 벚꽃처럼 전국에 퍼진 게 이유일 것이다. 일본 여자 이름엔 유독 ‘코’(子)가 많이 들어간다.

며칠 전 서울 혜화동에서 두 여자를 만났다. 한명은 순자였으며 또 한명은 공교롭게도 명자였다. 올해 56살인 순자씨는 그렇다 쳐도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명자란 이름은 유행과는 조금 먼 이름으로, 아직도 부모님을 향한 타박이 있는 듯했다.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이들은 작은 키와 야무진 모습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오랜 기간 투쟁을 한 경험으로 이들은 만나는 순간부터 눈과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엄마와 딸처럼 정겹게 보였고, 시간을 오래 공유한 끈끈한 동지애가 느껴질 만큼 그들은 착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 만난다는 사실이 무색했다.

김순자.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이며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다. 평범함이란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평범했다. 아니 주변에서 흔히 보는 청소노동자 모습의 전형인 것 같았다. 말솜씨는 화려하지 않았고 표현엔 에두름이 없었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고 진영을 가리지 않는 직설은 가끔씩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후보라는 느낌보다 엄마의 느낌이 더 강한 김순자씨였다. 그는 왜 후보가 된 것일까. 그가 청소노동자들을 잘 대변할 수 있을까란 생각은 그를 직접 만나고 사라졌다. 그는 대변자가 아니라 청소노동자 그 자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유명자.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이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해 1568일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다. 눈물이 많고 정이 많아서인지 주변엔 늘 사람이 많다. 예의 그 좋은 낙천적 웃음이 힘일까, 속절없이 흐른 1568일에도 그는 여전히 잘 웃고 잘 운다. 학습지교사 유명자씨는 1500일을 넘기지 않겠다고 결을 세우고 투쟁을 벼렸었다. 그러나 곧 1600일의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관심과 애정, 연대와 투쟁이 부족했다기엔 지난날 함께한 이들의 발걸음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태 해결은 미궁에 빠진 탐정놀이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명자씨는 개인의 안락을 원했다면 이처럼 긴 싸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이 지속되는 한 그의 싸움은 계속될지 모른다.

김순자씨는 작은 정당 진보신당의 비례후보 1번이기에 심심찮게 사표(死票)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해 힘을 한곳으로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표 분산이 우려되는 진보신당엔 표를 줘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가. 청소노동자를 국회로 보내고 가치 중심의 진보정당이 존립하는 것이 어찌 사표란 말인가. 오히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넓게 대변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야말로 사표(死票)의 저주가 아닌 사표(師表)로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

지난여름 나는 김진숙을 사랑했다. 부산까지의 희망버스가 지루할 틈 없이 설렘으로 가득 찼던 이유다. 2012년 4월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김순자와 유명자가 그들이다. 비난과 냉대에도 꿋꿋하게 자기 자리에 충실한 이들은 내게 스승이다. 순자와 명자의 수난시대를 마감하고 이들에게 더 의미있는 사회적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떨까.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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