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병탄 위기에 빠져 있던 1907년 12월 <대한매일신보>에 “국사가 지금에 이른 것은 민영휘와 조병갑의 탐학이 한 원인”이라는 논설이 실렸다. 고부 군수 조병갑은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교과서에도 등장하지만 민영휘는 누군가? 지금은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당시엔 어린아이도 조선 제일의 부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민영휘”라고 대답할 정도의 대부호였다.
아버지 민두호는 명성황후 민씨의 친정 친척오빠로 ‘민쇠갈고리’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탐관오리. 부자 모두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의 논밭과 재산을 수탈해 ‘토지대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1908년 민영휘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민씨 부자에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소송을 벌여 당시 언론에 보도된 것만 16건이나 됐다. 자신의 치부가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막기 위해 로비를 벌였으나 이 사실마저 보도된 뒤 민영휘는 가족들을 중국 상하이(상해)로 도피시키려 했다는 일화까지 전한다.
1910년 3월 이완용 등이 ‘한일합방’ 청원을 위해 만든 정치단체 정우회의 총재를 지내고 병탄에 협조한 공로로 자작 작위를 받는 등 친일행각을 벌이며 권력과 재산을 양손에 쥐고 승승장구했다. 1936년 6월 민영휘의 재산은 4천만원(4조8천억원) 규모였다고 한다.(이상 <우리 역사 속 부정부패 스캔들> 참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민영휘 후손 명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그의 막내아들 민규식 소유의 서울 삼청동 한옥 삼청장이 국가 소유로 넘어갔다가, 2009년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이 공매로 이를 헐값에 사들인 뒤 경호실 땅과 교환한 사실이 최근 공개돼 특혜 논란을 빚었다. 홍 회장의 아버지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일제 때 판사를 지내며 재판한 사건들 때문에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으니 친일의 뿌리가 넓고도 깊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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