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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논문 한탕주의의 비극 / 정재승

등록 2012-05-15 19:17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네이처·사이언스 같은
획일화된 잣대로
학문적 성취를 잴 수는 없다
1960년대 말 한국 과학자가 해외 연구소에서 처음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뒤, 지난 40년간 우리 과학자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우수한 연구들을 수행해 왔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연구가 처음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소개되면서, 국내 연구자들도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 간의 경쟁도 부쩍 늘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셀>, <미국국립과학원 회보> 등 저명한 저널에 논문을 싣지 못하면 교수가 되거나 승진을 하기 힘들 만큼 저널 출간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다.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널에 대여섯편의 논문을 싣는 것보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논문 한편을 싣는 걸 더 인정하니, 속된 말로 ‘학문적 한탕주의’가 판치는 것도 사실이다.

학창시절부터 한줄 세우기 외에는 다른 대안을 경험한 적이 없는 우리 과학자들은 취직이 되는 순간 과학저널들을 영향지수 순으로 정렬하기 바쁘고 논문 편수 채우기에 급급하다. 저자 순서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제1저자나 교신저자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이다 보니, 점수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나의 연구가 완성되고 한편의 논문이 나오는 데 기여한 공동연구자는 평균 3∼4명, 점점 그 수는 늘어가는 추세다. 공동연구를 독려하고 분야간 융합을 장려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제1저자가 되기 위한 정치적 암투나 공동저자 명단에 들어가기 위한 신경전이 만연한다. 연구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 실험과 분석을 수행한 사람, 논문을 쓴 사람, 연구비를 지원한 사람의 기여도를 결정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저자 순서를 정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경험을 과학자라면 한두번쯤 하게 된다. 공동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기여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누군가는 섭섭하고,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혜택을 본다.

얼마 전 학회에서 한국 과학자들이나 해외 유학생들, 박사후 연구원들이 ‘데이터에 탐욕적이다’, ‘공동연구의 기본 예의를 무시한다’, ‘네이처·사이언스·셀 등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얘기를 해외 과학자들에게 들었을 때 반발심도 크게 생겼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도 있어 낯이 뜨거웠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함께 연구하고 싶지 않은 괴물’로 만들었을까? 과학의 연구 대상은 자연이지만 그 활동은 과학자라는 인간이 하는 것이다 보니, 과학논문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1저자 쟁탈전이나 공동저자 순서 신경전이 공동연구자들의 인간관계를 망가뜨리고 결국 공동연구 그 자체까지 훼손하게 되는 경우만은 막아야 한다.

지난 40년간 사회심리학자들은 ‘창의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수준의 목표는 결코 보상과 처벌로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된 실험을 통해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한 학자의 학문적 우수성은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하나의 기준만으론 판단될 수 없다.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시스템을 운영한다면 이런 괴물은 날마다 탄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연구소,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지금의 평가 시스템은 ‘우리가 아직 학자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부끄러운 시스템이다. 학문적 호기심과 자발적 동기로 충만한 연구자만이 세상을 이끌 논문을 쓸 수 있다. 나태한 연구자들을 근절하기 위해 불행한 과학자들을 양산하는 지금과 같은 경쟁주의 시스템의 유용함을 더는 믿지 말길. 대안이 없다며 패배주의에 젖지도 말길. 시험 없는 학교에서 비로소 학문이 시작될 수 있음을 깨달아주길.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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