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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화학적 거세 / 정재권

등록 2012-05-23 19:21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동 성범죄자에게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명령이 내려졌다. 법 규정에 따라 본인 동의 없이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결정한 것이다. 흔한 말로 ‘화학적 거세’다. 거세란 애초 동물 수컷의 고환이나 암컷의 난소를 제거해 생식기능을 없애는 것을 뜻했다.

거세의 뿌리는 깊다. 중국에선 ‘궁형’이라는 형벌로 기원전인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미 성행했다. 한나라 무제로부터 궁형을 당하고 환관이 된 뒤 나중에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에서도 전쟁포로를 거세한 뒤 노예로 부렸다. 16~18세기 유럽에선 남성이 변성기 이후에도 여성 이상의 폭넓은 음역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거세가 사용됐다. 이런 남성 가수를 ‘카스트라토’라 부른다.

현대에 와선 물리적 거세 대신 약물로 성적 욕구를 줄이는 화학적 거세가 성폭력자 등에게 사용된다. 그렇지만 인권 경시 우려와 함께 심폐질환이나 간 기능 이상 같은 의학적 부작용 논란이 여전하다.

‘거세를 당했다’는 심리적·정신적 피해의식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1951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화학적 거세형에 처해졌다. 동성애자라는 이유에서다. 여성호르몬을 투여당했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곤 1954년 42살의 나이에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30년대에 컴퓨터의 기본 구상을 담은 ‘튜링머신’을 고안했고,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낸 천재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컴퓨터회사 애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로고인 ‘한입 베어 먹은 사과’가 튜링의 독사과에서 나왔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화학적 거세가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일찍 컴퓨터 세상을 맞이했을까? 오는 6월23일은 튜링 탄생 100돌이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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