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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지금 KTX에 필요한 건? / 송인걸

등록 2012-07-31 19:23

송인걸 사회2부 충청강원팀장
송인걸 사회2부 충청강원팀장
‘케이티엑스 고장’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하필이면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날씨에 전기를 공급하는 보조블록이 고장 나 멈춰섰다. 코레일은 “예상치 못했던 처음 있는 고장”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이란 말인가. 열차가 멈추고 터널 안 찜통 객차에서 승객이 쓰러졌다. 왜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항의받자 “충돌 등 사고가 아닌데 인명을 구조할 상황이 아니지 않으냐”고 강변한다. 이쯤 되면 케이티엑스도 코레일도 더위 먹은 게 분명하다.

부산 금정터널 사고가 난 지 만 4일 만인 31일, 정창영 코레일 사장과 주요 간부들이 정부대전청사 기자실에 나타났다. 예상했던 대로 ‘국민께 심려와 우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해명이다. “프랑스 알스톰사는 고장 난 보조블록의 사용 기간을 15년이라고 했다. 하나로도 정상운행이 가능한데 2개가 한꺼번에 고장 나기는 처음….”

앞으로 점검을 강화하고 기술 인력을 주요 역에 배치해 대비하겠다는 당연한 발언이 이어진다. 예상했던 대로다. 대충 틀은 갖췄다.

이제 책임을 가리는 일이 남았다. 명쾌한 결론을 기대한다면 순진한 거다. 이번엔 ‘자연’이다. 프랑스보다 연교차가 15도 이상 높고, 평지가 아닌 궤도를 달리다 보니 부품 수명이 줄어들었단다. 이런 행태가 낯설지 않다. 지난해 광명터널 탈선사고, 고속철도 건설 현장 시설 동파사고 때도 비슷했다.

국민은 안전한 케이티엑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고·고장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가 궁금하다. 부품 고장은 케이티엑스가 노후화됐다는 증거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아직 노후화된 고속열차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새 차를 사서 운전은 하는데 오일·소모품이나 교체할 줄 알았지, 엔진 소리가 왜 커지는지, 배기연기의 색깔과 엔진의 실린더링 상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는 수준인 거다.

‘차량 노후화와 기술진의 경험 부족을 어떻게 보완해 유지·보수할 것인가’가 케이티엑스를 타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코레일의 궁극적인 과제다.

코레일도 이런 심각성을 잘 안다. 그래서 케이티엑스 매뉴얼 개정에 나섰다. 새 매뉴얼은 알스톰사의 사용설명서에 프랑스철도공사(SNCF)의 운행 경험이 담긴 매뉴얼, 한국 고속철도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질 계획이다. 프랑스철도공사의 매뉴얼은 사야 한다. 현재 코레일은 프랑스철도공사와 조건과 가격 등을 흥정하고 있다.

이 매뉴얼은 1800쪽이고, 기술자문과 교육훈련 과정이 포함된다. 우리는 340억원을 제안했다. 그동안 무수한 시행착오와 기술이전 등을 통해 고속철도 기술력이 축적돼 우리에게 필요한 40여쪽만 사면 되므로 이 정도면 적절하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케이티엑스 구입계약 당시 한국에 이 매뉴얼을 싸게 팔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우리는 안 샀다. 고속철 기술 관계자들은 매뉴얼 구입이 필수라고 건의했으나 묵살됐다. 그 비싼 고속열차를 46편성이나 샀는데도 ‘종이 쪼가리’를 500억~600억원에 판다니 비위가 상했을 법하다. 큰 벽시계 샀다고 서비스로 손목시계 끼워주는 시계방은 없다는 걸 몰랐다.

이 매뉴얼이 한국으로 넘어오지 못한 근본 원인은 1994년 프랑스와 고속철 도입 계약 당시 김영삼 정부가 노후화에 대비한 중정비 부분을 빼놓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케이티엑스는 1급 정비공장과 분야별 정비사, 매뉴얼 없이 운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국민 안전을 위해 낡아가는 케이티엑스의 유지·보수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국토부와 정부에 묻는다. 경쟁체제 도입이 미뤄져 밉겠지만 코레일한테만 사고와 고장 책임이 있는가.

송인걸 사회2부 충청강원팀장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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