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 역사에서 스위스인은 가장 호전적인 민족으로 통한다. 격렬한 전쟁터의 선봉엔 어김없이 스위스 용병이 있었다. 14~15세기 프랑스 발루아 왕가는 스위스 용병을 쓰지 않으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고 여겼다.
교황을 호위하는 110명 규모의 근위대는 스위스 병사로만 구성돼 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카를로스1세)가 교황 클레멘스7세를 공격할 때 다른 나라 군인들은 모두 항복했지만, 스위스 근위대만 결사저항하며 교황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스위스 근위대 대부분이 전사했다. 이후 교황청 근위대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위스 병사로만 구성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루체른에는 스위스인들의 아픈 역사를 형상화한 조각상이 있다. 창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프랑스 왕가의 방패를 끌어안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자상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1792년 튀일리(튈르리)궁에 유배당한 루이16세를 지키다가 전멸한 스위스 용병 700여명의 죽음을 기리는 조각이다. 자국 근위대도 달아났지만 스위스 용병만 남아 싸우다 전원 전사했다.
1815년 빈(비엔나)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은 스위스는 용병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농업이 힘든 산악지형으로 한때 유럽의 최빈국이던 스위스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외국의 용병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고용주 신뢰를 얻어야 계약이 지속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용병은 누구보다 맹렬하게 싸웠다. 서로 다른 제후에게 고용된 스위스 형제가 전투에서 만나 창을 겨누는 경우도 생겼다. 중립국 선택의 배경엔 남의 나라 전투에서 돈 때문에 사납게 싸워야 했던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다. 스위스는 중립국 승인 이후 교황청을 제외한 외국군대 입대를 전면금지했다. 컨택터스로 불거진 기업용병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반성을 내놓을 것인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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