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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 연대로 / 김동춘

등록 2012-08-20 19:17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고문피해 생존자들의 모임인 ‘진실의 힘’이 국가폭력 피해 치유를 위한 씨앗기금으로 3000만원을 내놓았다고 한다. ‘진실의 힘’은 작년에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심리치료를 위한 센터 ‘와락’ 건립을 위해 2000만원을 출연한 바 있다. 국가폭력의 피해는 결코 개인이 짊어져야 할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2000만원을 생활보호 대상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은 일도 있었고, 황금자 할머니는 임대아파트에서 힘겹게 지내면서 정부에서 준 위로금과 폐지를 팔아서 모은 1억원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고 유언장을 써 놓기도 했다. 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자신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으면 콩고 등지 세계 각지의 전쟁피해여성을 위해 쓰겠다고 선언하여 ‘나비기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응당 국가로부터 위로와 보상을 받아야 하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해야 하고,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서 그 대가로 호의호식해온 사람들에게 구상권까지 청구하는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고 가족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처참한 가난에 신음하게 되었으면서도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돈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오늘의 피해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쾌척한 일 자체는 감동적이다. 이들에게 2000만원은 사회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기업가들이 내놓은 수천억의 기부금보다 값지다. 이들은 이미 도덕적으로 가해자들에게 이겼다. 장차 동참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한편 우리도 국가나 대기업의 횡포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권익투쟁에 힘을 보태야 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투쟁에는 함정이 있다. “악마와 싸우다 보면 악마를 닮는다”는 말처럼 권리 요구와 투쟁에만 매달리면, 투쟁의 대의에 소극적인 동료를 원망하거나 투쟁 노선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분열 대립하기 쉽고, 결국 목표도 얻기 전에 스스로의 육체나 정신 모두를 망가뜨리는 수가 많다. 그리고 눈앞의 투쟁 목표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더 큰 목표나 이상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투쟁을 하는 목적은 우선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자는 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투쟁의 과정에는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대안적 조직문화, 그리고 생산과 건설의 전망까지 어느 정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소 이상이기는 하지만 투쟁 속에서 새 인간, 관계, 국가, 사회의 싹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통합진보당이나 조직노조 활동이 뒷걸음친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폭력 탄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주체의 정신적 무장해제와 파편화다. 이익의 논리가 종교처럼 압도하는 ‘기업사회’는 모든 사람을 경쟁하는 개인으로 파편화한다. 사회관계가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가진 사람은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못 가진 사람은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불안해하기 때문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투쟁 구호는 대단히 전투적이지만, 힘들여서 ‘승리’해도 뿔뿔이 흩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기업형슈퍼마켓(SSM) 반대 운동은 마을 살리기 운동이 되어야 하고, 비정규직 차별철폐운동은 노동자 서로돕기 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을 뻗으면 진보가 살 것이고 장차 진보정치도 살아날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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