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4월4일 한 조간신문은 사회면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씨 구속”이란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친구와 함께 대마초 흡연…나이트클럽서 취중절도 혐의’라는 부제를 달아 사진과 함께 6단으로 크게 보도했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국민영웅은 하루아침에 잡범으로 추락했다.
동명이인의 범죄였다. 특종 욕심에 확인 없이 경찰 조서만 믿고 보도한 오보였다. 이 신문은 이튿날 ‘금메달 양정모 선수, 동명이인의 사칭에 “내 이름 파는 가짜 다시는 없길”’ 기사를 실어 양 선수가 조폐공사에서 모범간부로 일하며 후진양성에 열중하고 있다고 해명성 보도를 했다. ‘오보’였다는 표현도 ‘사과’도 없었다.
대법원은 1998년 이혼소송을 제기한 원고 여성이 남편에게 청부폭력을 행사했다는 오보 사건 판결에서 범죄 기사의 실명 보도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범죄 보도는 공익에 속하지만, 범인과 혐의자에 대한 보도가 범죄 자체에 대한 보도처럼 공익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에 따라 국내에서 범죄 기사의 실명보도 관행은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신문이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실명과 얼굴을 검거 직후부터 공개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듬해 경찰은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범부터 강력범죄 용의자들의 신원 공개에 나섰다. 사회적 파장이 큰 흉악범의 경우 무죄추정 원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흉악범에 대한 사진과 실명 공개로 국민 분노는 높아졌지만 실질적으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범죄 보도의 상업화 폐해가 심해졌다는 점이다.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이후 일부 언론은 경쟁적으로 범인 얼굴 공개에 나섰고, <조선일보>는 범인의 얼굴이라며 무고한 시민의 얼굴을 1면에 실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문재인 1위…그러나 과반은 무너졌다
■ “김대중과의 화해가 죽음을 불러왔어”
■ 애플은 왜 자꾸 도둑맞았다는 걸까요?
■ 하버드 대학, 125명 집단 부정행위 ‘충격’
■ 격앙된 나주 주민들 “저게 짐승이지 사람이냐”
■ 개와 고양이는 정말 앙숙일까
■ [화보] 우산의 수난시대
■ 문재인 1위…그러나 과반은 무너졌다
■ “김대중과의 화해가 죽음을 불러왔어”
■ 애플은 왜 자꾸 도둑맞았다는 걸까요?
■ 하버드 대학, 125명 집단 부정행위 ‘충격’
■ 격앙된 나주 주민들 “저게 짐승이지 사람이냐”
■ 개와 고양이는 정말 앙숙일까
■ [화보] 우산의 수난시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