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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성숙한 사랑 / 혜민

등록 2012-09-03 19:26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9월이 되니 미국 대학의 캠퍼스엔 새 학년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가득하다. 교수들 역시 방학 내내 보지 못했던 반가운 동료들을 만나 여름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미소와 함께 안부부터 묻게 된다. 친한 친구이자 동료 교수인 수전을 보자 뛰어가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방학이 어땠냐고 묻자 평소 밝은 성격인 수전의 얼굴에 그늘이 보였다. 무슨 일일까? 마치 어깨에 큰 짐이라도 진 것처럼 좀 불편해 보였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점심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교내식당을 향해 걷는 동안 수전은 평소와 달리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몇 주 전에 남편 전화로 온 문자를 보고 느낌이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외도가 맞더라고. 남편은 미안하다고 울면서 용서해달라고 하는데 너무도 큰 충격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 일로 지금까지 평탄했던 가정생활이 완전히 뒤바뀔 것 같아 무섭고, 남편을 이렇게 미워하는 감정 또한 너무도 낯설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들이 부모의 이런 상황을 눈치챌까봐 겁난다고 했다.

수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참 안타까웠다. 얼마나 놀랐을까? 아마도 수전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으리라. 그런데 보면 이와 비슷한 일로 내게 상담을 요청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 바람 피운 것을 알고 깊은 상처와 배신감에 잠 못 이루면서 헤어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라며 스님의 지혜로운 조언을 구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 같다. 남녀가 처음 만나 로맨틱한 사랑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깊은 이해와 넓은 포용이 있는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호르몬으로 증장된 강렬하고도 로맨틱한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해질 대로 평범해진 일상을 맞이하게 될 때, 예전에는 나를 전혀 괴롭히지 않았던 상대방의 기이한 버릇이나 말투가 신경에 거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불만이 쌓이면서 그를 비평하거나 아니면 내 마음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헛된 노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삶의 방식 차이에서 오는 실망은 갈등을 동반하게 되고, 이때 상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이해해주고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사랑으로 깊어지지 않으면 불륜이라는 새로운 유혹에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수전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일단 남성들의 경우, 부인과 이혼을 하면서까지 새로 만나는 여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보고가 있다. 즉, 수전의 남편처럼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떻게 해서든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 남성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또한 불륜의 근본 문제가 내 남편과 만나고 있는 여성이 유혹해서라기보다는, 현재 나와 남편의 관계 속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남편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현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냉정한 반성을 통해 근본 원인을 꼭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배신감에서 비롯된 남편을 향한 분노도 일정 기간 표현할 순 있으나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이 느껴진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분노보다 서로가 사랑하는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행동을 내키지 않아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양면이 있듯이, 그런 기회를 통해 남편과 본인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솔직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 실천한다면 예전보다 오히려 더 나은 결혼생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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