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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공작새의 깃털과 진정성의 과학 / 장대익

등록 2012-10-10 19:16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화려한 깃털을 활짝 편 수컷 공작새 앞을 암컷이 무심히 지나간다. 만일 수컷의 뇌를 읽을 수만 있다면 아마 우리는 이런 처절한 문구를 보게 되리라. ‘보소. 나 괜찮은 놈이오. 그러니 마음을 한번 주면 안 되겠소?’ 얄궂은 동물행동학자들은 암컷이 대체 어떤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하는지를 연구했다. 깃털에 있는 무늬가 선명할 것, 그 무늬가 많을 것, 깃털의 길이가 길 것. 이 세 가지가 수컷의 짝짓기 성공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그러니 요란한 깃털을 펄럭이며 날아야 하는 수컷은 살짝 버겁다. 짝짓기를 위해 비싸게 장만한 장식이지만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자연계에는 이런 버거움이 아주 흔하다. 수컷 산쑥들꿩은 번식기가 되면 들판에서 하루종일 가슴 부위를 부풀리며 에너지를 탕진한다. 목표는 단 하나.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다. 꼭 짝짓기의 경우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를 본 가젤은 갑자기 생뚱맞은 뜀뛰기를 시작한다. 날 잡아 잡수시라는 뜻인가? 아니다. 내가 이 정도로 날렵하니 다른 데나 가서 알아보라는 뜻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산쑥들꿩의 부푼 가슴, 가젤의 뜀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값비싼 신호라는 것. 수컷 공작새가 길고 선명하고 화려한 깃털을 소유하려면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산쑥들꿩이 누런 가슴을 크게 부풀리려면 몸의 에너지 효율이 좋아야 한다. 뛰어난 근력과 순발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젤은 껑충껑충 뛸 수 없다. 즉 이들은 모두 아주 ‘비싼’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냄으로써 자신의 진정성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능력자가 아니면 도저히 소유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정직한’ 신호들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이런 값나가는 신호를 알아채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끔 행동한다. 비싼 신호라면 그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외계인 과학자라면, 그는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 같다. 평생을 허튼 곳에 돈 써본 일이 없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도 낭비 종결자의 모습을 보여준 때가 딱 한번 있다. 부인과의 결혼식을 위해 하와이의 호텔을 전부 예약한 사건이 그것이다.(일반인은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연인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그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초호화판 신호를 보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빌 게이츠의 결혼과 가정에 대한 진정성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2002년 대선 직전, 당시 노무현 후보의 텔레비전 광고를 기억하는가? 노 후보의 인생 역정이 짧은 필름으로 스쳐 지나가자 그는 기타를 퉁기며 나직이 노래를 부른다. 주르륵 눈물을 흘리면서. 이게 광고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충격과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50만표 이상 뒤지고 있었던 노 후보 쪽에게 그 광고는 대역전극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들 한다. 국민은 그 눈물에서 노 후보의 인생과 진심이 담긴 값비싼 신호를 포착했을 것이다.

진정성이 이번 대선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은 없다. 지난 1년 동안의 뉴스 중에서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 건수는 2007년에 검색한 같은 기간 동안의 기사 건수에 비해 4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자질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결코 비싼 진심의 신호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진실이 간과되고 있는 듯하다. 마지못한 사과, 의지박약의 정책, 얄팍한 기용, 그리고 무능한 보좌는 싸구려 신호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싼 티를 알아본다. 진정성은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자들만이 보낼 수 있는 정직한 신호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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