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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착한 일은 남들이 알아줘야 제맛 / 전중환

등록 2012-10-15 19:19수정 2012-10-16 10:24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혹시 다니는 직장의 휴게실 한쪽 구석에 커피메이커가 있는지? 그 옆에 정해진 커피 값을 양심에 따라 치르는 무인 계산함도 함께 놓여 있는지?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여러분은 이제 재미있는 심리 실험을 할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한 쌍의 눈(目) 사진을 커피메이커 바로 위 벽에 붙인다. 일주일 뒤 눈 사진을 떼고 화사한 꽃 사진을 같은 위치에 붙인다. 예측하건대 눈 사진을 붙였을 때 사람들이 무인 계산함에 넣은 금액이 꽃 사진을 붙였을 때보다 더 많을 것이다. 2006년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심리학과 휴게실에서 실제로 진행한 실험이다. 눈 사진을 붙였을 때 낸 평균 금액은 꽃 사진 때보다 거의 세 배 더 많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몹시 의식한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 착하고 협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평판이 달린 문제에서 착하게 처신하는 심리는,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폭넓게 협력하는 우리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동물 사회는 주로 가까운 혈연끼리만 협력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끼리 학교나 기업, 선거 캠프처럼 대규모 조직을 이루고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힘을 합치는 종은 인간뿐이다.

왜 우리는 서로 협력할까? 내가 너를 도와주면 나중엔 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쌍방이 모두 이득을 얻는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다. 혼자 목욕탕에 가서 등의 때를 밀지 못한 채 목욕을 끝마치는 건 찜찜하다. 혼자 온 듯한 사람에게 제안해 등의 때를 서로 밀어주는 편이 더 이득이다. 그러나 친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협력 행동이 상대방이 내게 도움을 되갚아주리라는 기대하에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재민 돕기 자동응답전화번호를 누르며 “저 수재민이 나중에 내가 수재를 당하면 내 계좌에 입금해 주겠지”라고 미소 짓는 사람은 없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이 대목에서 평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종종 도움을 되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꺼이 남을 돕는 까닭은 내 평판을 올리기 위함이다. 착한 평판이 난 사람은 나중에 제삼자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쉽다. 반면에 나쁜 평판이 난 사람은 나중에 제삼자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렵다. “내가 너를 도와주면 나중엔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정신이 인간 사회의 대규모 협력을 만들어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강도를 만난 사람을 기꺼이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은 나중에 이웃들로부터 도움을 우선적으로 받기 마련이다.

이런 설명은 공정무역 제품이나 친환경 녹색 제품처럼 공익을 증진하지만 소비자 개인에게는 높은 가격이나 비효율로 더 손해인 ‘착한’ 제품의 마케팅에 활용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손해를 보는 선택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타적인 소비를 할 만큼 자신이 착한 사람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광고할 수 있다면, 나중에 남들로부터 도움받을 가능성을 높이고자 기꺼이 ‘착한’ 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이를테면 공정무역 커피의 가격을 오히려 더 인상한 다음에, 이 커피 상표는 다른 상표들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착한 것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어떨까. 비싼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일이 바보 같기는커녕 ‘쿨’하다고 여기는 흐름이 형성될 것이다. “지성인이라면 우리 모두를 위해 비싼 친환경 녹색 제품을 사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계도하는 대신, 소비자가 착한 소비를 했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알려지게끔 조용히 도와주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 교수가 혜민 스님의 뒤를 이어 필자로 참여합니다. 혜민 스님은 ‘삶의 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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