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가을이 깊었다. 낙엽이 밟히는 소리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연의 신호다. 안철수의 등장과 문재인-안철수의 경합은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권력교체를 위한 결정적 일보를 내딛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문재인, 박근혜-안철수 간의 지지율 균형은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경쟁이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되었다는 증거다. 이대로 가면 최후엔 지난 총선 때처럼 ‘투표하라!’는 공허한 외침만 남는다. 그건 절망이다.
민주통합당은 이해찬-박지원 체제의 퇴진을 비롯한 과감한 다시나기를 못하고 있고, 비정당적 유권자들의 신뢰를 확대하는 데도 실패했다. 안철수 캠프는 기존 정치세력과 차별화하는 작은 정치에 몰두한 나머지, 판세를 장악할 굵은 의제를 치고나오지 못하고 중도층·부동층을 대변하는 전통적 제3세력이 되어가는 인상이다. 이는 근본적으론 단일화 경합을 염두에 둔 근시안적 득표율 경쟁의 결과다.
좁은 의미의 정치혁신안을 놓고 서로 잽을 주고받느라, 정작 다수 국민이 호소해온 핵심 의제들로 본선의 적장인 박근혜 후보와 한국 사회의 진정한 기득권 세력에게 강력한 어퍼컷을 날리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안정과 노동권 강화, 보편적 복지의 확대, 그리고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과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좀더 확실한 제도적 장치들 말이다. 민주당은 기득권 세력이다, 안철수는 반정치 세력이다, 이런 논쟁으로 득을 취할 자가 누구일지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과 인권을 세우기 위해 대결할 상대는 따로 있다. 기업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인구의 50%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자들, 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의 복지지출도 아깝다고 줄이려는 자들, 용역깡패들이 회사에서 도끼를 휘두르게 내버려두는 자들, 전체 가구의 44%에 이르는 임대생활자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도 제공하길 거부하는 자들, 국민의 안위보다 강대국과의 친선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들의 권력을 억제하고 국민의 권력을 높이는 게 정치혁신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10년 동안 다수 국민이 정치에 요구했던 개혁, 정치에 실망했던 이유를 되짚어보자. 김대중·노무현 개혁정부의 흐름이 꺾이고 역사적 반동이 시작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정부의 국정방향이 ‘너무 개혁적이어서 문제’라는 사람은 15.8%였던 데 반해, ‘기대만큼 개혁적이지 않아서 문제’라는 사람이 49.2%였다. 사람들은 어떤 개혁을 원하고 있었던 걸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한귀영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기 동안 진보적 노선의 사회경제적 의제를 제기했을 때 지지율이 높아진 반면, 행정수도 이전이나 대연정 구상 등 민생에 직결되지 않는 정치개혁 의제는 지지율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3.6%가 차기 정부의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로 경제적 양극화의 완화를 꼽았고, 정치개혁은 2.8%였다.
지난 몇년간의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민생경제 해결, 50% 안팎이 복지 확대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고 있음이 거듭 확인된다. 10년 동안 풀리지 않은 국민적 염원인 것이다. 정당제도 개혁과 정치인의 특권 축소 등 정치체제 전반의 혁신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의 존재이유를 체감하게 해줄 국정개혁의 굵직한 로드맵이다. 정치혁신의 의미를 좀더 크게 생각해보자. 서로 상처 입히기보다 어깨 겯고 전진할 때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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