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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폭로전 관람기 / 이나영

등록 2012-11-27 19:12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1. 한 검사와 여성 피의자 간의 사건이 문제가 되고 있다. 쟁점은 여성 쪽 변호사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검찰 쪽은 불기소 처분을 대가로 한 ‘성상납’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2. 국립 ㅅ대의 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000년대 들어 월드컵의 영향으로 여성 법조인이 더 선발됐다고 주장했다. 세 차례 월드컵이 모두 사법시험 2차 일정과 겹쳤고, 이것이 여성 응시자가 2차 시험의 문턱을 넘어 법조계에 더 많이 입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상호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두 장면은 우리 사회의 젠더의식을 비교적 정확하게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홍성담 화백의 그림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우선 첫번째 사건이 확인시켜 주는 새롭지 않은 진실은 남녀 간에 권력관계가 성립하면 여성의 몸은 권력자에게 상납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플러스! 현실에서 성폭력/관계/성상납(거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의 몸 위에서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친절히 부록으로 끼워준다.

두번째, 언론에 보도된 대로만 해당 연구를 이해하자면, 많은 여성이 사법시험 2차의 문턱을 ‘넘은’ 이유가 남성들이 월드컵에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다. 웃기도 어려운 사실은 스포츠 관람에 대한 성별화된 이해에 근거해 황새가 많은 지역에서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하는 식의 내용을 <한겨레>를 비롯한 각종 언론이 앞다투어 전했다는 점이다. 연구의 출발에 깔린 무의식적 기제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에 따라 기존의 젠더질서가 붕괴하고 남성들의 위치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일 것이고, 언론의 집중보도는 기존 질서를 방어하고자 하는 남성들 간의 연대감에 기인한 것이리라.

두 이야기를 묶어 보자. 남성권력의 종속적 존재로서 여성의 몸은 관계를 표현하는 장이자 폭력의 대상이요, 거래의 도구이다. 몸이 아니라 머리로 존재하는 여성들, 그래서 권력을 스스로 창출하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위협이 되며, 더 직접적으로는 내 존재 자체에 위협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은 남성들의 후광과 지원이 있을 때만 가능하거나, 양보와 순간적인 실수가 있을 때 어부지리로 획득된 것일 뿐이라고 애써 폄하해야만 남성들의 자존심이 유지된다.

문제는 근대성이 체화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으로 분열된 채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주체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몸과 머리, 주체와 대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에 남성성을 보증받고자 매달릴수록 스스로 불안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런 현실에서 홍성담 화백의 이른바 ‘낙태그림’ 시리즈와 이를 둘러싼 담론적 쟁투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텍스트의 이미지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남성들의 새롭지 않은 표현양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며, 성별코드 또한 논쟁의 주체들이 늘 동원하는 정치적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성의 몸은 순결과 깨끗함, 불결과 오염이 교차하는 권력의 쟁투장이었다. 그러므로 낙태그림 시리즈를 둘러싼 논쟁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여성의 몸과 젠더에 관한 우리 사회의 구태의연한 (무)의식 구조를 징후적으로 폭로하고 있기에 오히려 정치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그저 ‘여성’을 빙자한 정치적 폭로전을 관람하며 떡이나 먹으면 된다. 싸움이 진행되면 될수록 불안감은 증폭되고 추한 맨얼굴들은 속속 드러날 터이니.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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