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나치에 협력한 비시 정권의 프랑스 해군 병사들이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섬에 잔류하게 되었다. 인종주의자의 본색을 드러낸 그들은 온갖 패륜과 악행을 저질렀다. 이에 분개한 18살 흑인 소년이 섬을 탈출해 프랑스의 독립을 찾으려는 자유군에 가입했다. 이렇게 프란츠 파농은 연합군과 함께 아프리카와 유럽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부상을 당한 뒤 훈장을 받았다. 나치가 패배하고 연합군이 라인강을 건너 독일로 진주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했다. 부대에서는 유색인 병사들을 제외시켰다. 파농과 서인도제도 출신 동료들은 사진 기자들의 관심 밖인 프랑스 남부로 이송된 뒤 귀향 조처되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둔 책이다. 식민지 흑인의 자아는 분열되었다. 태생의 흑인 정체성은 백인 세계의 미세한 접촉만으로 흔들린다. 어릴 적부터 검은색은 나쁘다고 연상하도록 지속적·무의식적 훈련을 받은 결과다. 그 열등감 때문에 흑인은 백인의 문화적 규약을 모방한다. 교육받은 흑인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들은 자신의 동족이 그들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백인의 출현 이후 흑인의 끊임없는 자기부정은 바로 백인의 끊임없는 타자화에 유래한다. 흑인은 “백인과의 관계에서만” 흑인이 되고, 그들은 제 땅에서 유배된 사람이 된다.
<저주받은 자들>에서는 독립을 위한 흑인의 저항이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논한다. 침입한 백인의 힘은 군사적 힘일 뿐이고, 그들이 말하는 언어는 폭력의 언어일 뿐이기에 그에 대한 저항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 폭력은 백인 지배자들에 의해 부과된 것이다. 모든 폭력의 옹호자라는 널리 퍼진 견해와 달리 파농은 힘을 가진 자들이 사용하는 폭력에 대한 대응 폭력을 수용할 뿐이다. 대선 이후 제 땅에서 유배된 심정의 사람들이 많다. 누구도 폭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세상이 되기 바란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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