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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조언

등록 2013-03-04 19:29수정 2013-05-14 14:31

한비자는 현실주의 정치사상가였다. 그는 통치자가 백성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 신뢰를 형성하는 게 법치의 출발이라며 신상필벌을 강조했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따라오려는 아들을 달래느라 돼지를 잡아주겠다고 한 뒤 식언하려 하자 증자가 소중한 돼지를 잡아 아이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가르쳤다는 이야기(曾子殺

), 위나라의 문후가 사냥터지기와 사냥을 가겠다고 약속한 뒤 폭풍우가 몰아쳐 신하들이 만류했음에도 친히 사냥터까지 나가 일정을 취소함으로써 애초의 약속을 지켰다는 이야기(魏文侯守信) 등은 한비자가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일화들이다. 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제아무리 권모술수에 능해도 권력 기반이 늘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권모술수를 긍정했으나 기만을 찬양하지는 않았다.

한비자보다 1700년쯤 뒤에 태어난 마키아벨리도 권모술수를 긍정한 현실주의 정치사상가지만 그의 조언은 다르다. 그는 “군주는 결코 약속을 깨뜨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사기꾼의 눈에는 언제나 속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늘어서 있다”며 “사기꾼을 속이는 건 기쁨 두 배”라고도 했다. 그는 군주가 자비, 정직, 관대함 등의 미덕을 “실제로 갖출 필요는 없고, 갖춘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며, 실제로 갖추려고 노력하는 건 되레 해롭다”고까지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기만을 찬양했다.

약속 이행에 관한 두 사람의 조언 가운데 하나는 악마의 것이다. 어느 쪽을 따를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으로 신자유주의 타도에 기여했다. 지하경제를 잡아 135조원의 복지예산을 확보해야 공약이 이뤄진다. 당장은 마키아벨리의 조언이 솔깃하겠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약속 이행에는 늘 곤경이 따르지만 신뢰가 정치의 생명이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온 재산인 돼지를 잡고 폭우 속을 달려간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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