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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개헌의 정치경제학 / 유종일

등록 2013-04-15 19:07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여야가 개헌 논의를 위한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자칫 개헌이 개악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선거제도 개혁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지역주의를 볼모로 삼아 제도권 정치를 지배해온 기존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퇴행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민주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지금 개헌론의 대세는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이에 공감을 표시했으며, 국민들 사이에도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어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책임정치를 실현하게 하고, 비대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승자독식 논리에 따른 권력투쟁의 정치문화를 권력분점 논리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제법 설득력 있는 논리다.

그런데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권력을 누가 누구와 나누고, 누가 누구를 견제하며, 누가 누구와 타협한다는 것인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기득권 정당들끼리 나누어 먹기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싸잡아 기득권 정당이라고 폄훼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조금 진보적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했듯이 사회경제정책 면에서 양당의 차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이 진보성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당의 색깔을 바꾼 것이나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건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로 멘붕에 빠져 있을 때 터져 나온 실세들의 ‘쪽지예산’과 외유논란, 선거에 연전연패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이 각자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당, 이런 것이 민주당의 모습 아니던가.

과거에 김문수 경기지사가 자신의 정치노선 변경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당선은 천국이고 낙선은 지옥”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한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야말로 승자독식의 제도로 되어 있어서 수많은 폐해를 자아내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군소정당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어 있고, 이는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양대 정당의 기득권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정치시장의 독과점화로 유효경쟁이 사라지고, 저질 정치가 지속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원래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에게 유리한 선거제도이다. 더구나 양대 정당의 정치시장 독과점은 당 실력자들이 공천에 큰 힘을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공적 가치에 헌신적이며 유능한 인재보다는 당 실력자들에게 유용한 인사들이 공천을 받기 십상이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이루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강화되어버린 까닭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가 심화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그 핵심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다. 비례대표제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제값을 쳐주고, 정치혁신을 유도하며, 정책경쟁과 합의정치를 조장하는 제도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강력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라는 것은 비교정치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권력구조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이다. 안 그래도 재벌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 없이 섣부르게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를 실시했다가는 금권정치의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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