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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한국일보는 ‘없다’

등록 2013-06-18 19:22수정 2018-05-11 15:13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진해운빌딩 신관 15층 편집국 입구에서 일부 부장급 기자들이 제작해 발행한 <한국일보>를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진해운빌딩 신관 15층 편집국 입구에서 일부 부장급 기자들이 제작해 발행한 <한국일보>를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난 <한국일보>에 지분이 있다.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국일보사 주식이 있어서도, 그곳에 근무해서도, 사주들에게 받을 빚이 있어서도 아니다.

나는 한국일보로 글을 배웠고 문장을 익혔고 사설에서 한자를 떠듬떠듬 읽으며 자랐다. 연재소설의 작가도 제목도 칼럼의 필자도 전부 기억한다. 50년대부터 지난 60년 동안 한국일보 지면을 빛낸 기자들 이름을 줄줄이 외울 수 있다. 한때는 기사 스크랩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한국일보를 읽으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

한국일보사가 이틀째 파행신문을 냈다. 제호는 한국일보지만 연합뉴스를 짜깁기한 연합일보다. 편집국을 폐쇄하고 용역을 동원해서 기자들 170명을 출입금지시켰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전부 퇴사처리했다. 사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서약서에 도장을 찍은 여남은 명의 기자들이 신문지면을 메꾸고 있다. 창간 이래 열혈 애독자였던 나로서는 이 상황에 대해 말할 권리라는 지분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건 한국일보가 아니라는 말을 해야만 한다.

한국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던가. 누가 뭐래도 사회면 기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간신문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뜨끈뜨끈하고 생동감 넘치는 기사들로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창업자인 장기영은 언론사주이자 기자였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기자 공채를 시작했고 학력 제한을 두지 않고 수습기자를 뽑았다. 그리고 여기자가 가장 많았던 신문이기도 했다.

아침에 신문이 좀 늦거나 배달사고가 나면 사장실에 직접 전화하셨던 내 아버지… 사장 바꾸시오라고 점잖게 말하셨는데 어느 날 진짜 장기영씨가 받았다. 장기영씨는 항상 현장에 있었다. 배달사고가 일어나면 직접 새벽에 보급소에도 나가고 사장실로 직접 배달사고를 접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장기영 사장이 전화를 받은 날 비서실에서 신문 한 부를 갖고 우리 집에 달려왔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무조건 한국일보 지지자들이었다.

중학동 14번지 그 건물… 초록색의 깃발이 펄럭일 때마다 생동감이 넘쳤던 한국일보 건물, 전면엔 각종 현수막이 걸려 있고 뭔가 싱싱한 기사가 당장 신문지면에 펼쳐지리라 기대되었던 건물이었다. 가판이 인쇄되어 나오면 초록색 로고가 새겨진 수송트럭이 배달을 시작하려고 부릉부릉 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던 뒤편의 주차장 풍경을 나는 설렘을 가지고 생생히 기억한다. 그 좋은 땅에, 그렇게 입지가 좋은 자리에, 서쪽으로 인왕산, 북쪽으로 북악산 북한산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남산이 손 닿을 듯 보이던 그 자리엔 지금 사면이 유리로 된 건물이 두 채 들어서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이 거대한 건물의 한 층조차 차지하지 못한 한국일보의 운명과 그 책임을 져야 할 사주의 무능에 대한 원망으로 혀를 찼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한국일보사의 몰락은 벌써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장기영씨의 죽음, 회사를 물려받은 큰아들 장강재씨의 이른 죽음, 그 뒤 장강재씨의 아들들과 나머지 네 아들들의 재산싸움으로 한국일보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삼촌과 조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과 추문들, 도박과 횡령, 배임 등 20여명에 달하는 장씨 패밀리가 한국일보라는 거대한 미디어그룹을 산산조각 내었다. 한국일보·영자신문·경제신문·스포츠·주간지·어린이신문·미주한국일보 등을 모두 나누어 가졌다. 한국일보를 지키지 못한 것은 기자들이 아니라 장씨 패밀리다.

한국일보사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기자들은 경영 잘못과 재산싸움으로 찌그러든 신문을 박봉을 감수하고 지키려 했다. 창간 이래 이 신문을 사랑하고 믿은 꾸준한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사가 없으면 한국일보도 없는 것인가. 하루아침에 ‘강제 퇴사’당한 기자들의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얼마나 먹먹할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 많은 장씨 패밀리 가운데 몇몇이라도 이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200억원의 배임 혐의로 고소당한 현재의 장재구 사주를 좀 말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한국일보는 없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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