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 삐~ 이 글이 영등위 심의 대상이었다면 제한상영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4년 강남경찰서 출입 시절, 이른바 ‘한의사 부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재산을 노린 부부의 24살 장남. 한국 사회에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존속살해 사건 앞에 ‘뭘 더 쓰나’ 우왕좌왕하던 기자들 사이, 홍콩 비디오를 범인이 언급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떠돌았다. 범행 수법을 설명하며 문화부 선배에게 “비슷한 영화 없냐?”고 무작정 물었다. 다행히 기사화되진 않았지만, 그땐 그랬다. 범죄에는 단골처럼 영화가 언급되던, 거의 20년 전 얘기다.
2002년 개봉한 박진표 감독의 데뷔작 <죽어도 좋아>는 팽팽한 20대의 육체 대신 쭈그러지고 늙은 70대 부부의 사랑에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구강성교와 성기 노출 등의 장면을 문제 삼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두차례 제한상영 판정을 내리자, 위원 5명이 반발해 사퇴하고 제작사가 ‘문제의 7분’을 어둡게 처리한 끝에 세번째 심의에서 ‘18살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주연인 할아버지·할머니는 인터뷰 당시 내게 말했다. “우리 전에 제한상영가를 받은 건 <동물의 쌍붙기>뿐이잖아. 우리를 동물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 같았어.” 10여년 전 얘기다.
그리고 2013년 7월26일, 근친상간을 그렸다는 등의 이유로 두차례 제한상영 결정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유례없는 찬반시사회를 연다. 제한상영 등급 전용관이 없는 실정에서 사실상 상영 길이 끊겨버린 김 감독은 두차례 자진 삭제로 약 2분30초를 잘라냈다. “이제 영등위에서 주장하는 직계 성관계로 볼 장면은 없”을 것이라며 비공개 시사회 투표에서 30%가 개봉에 반대하면 3차 심의와 관계없이 개봉을 않겠다고 그는 밝혔다.
맥락과 관계없이 어떤 영화의 일부 묘사가 한국 성인들의 심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범죄만 발생하면 영화 탓을 하던 20년 전 딱 그 수준이다. 근친상간을 모티브 삼은 고전 <오이디푸스> 얘기까지 꺼내고 싶지도 않다. (하긴 제한상영을 두차례 받고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김곡·김선 감독의 <자가당착>도 아버지·어머니를 부정하는 인형 포돌이가 주연이니, 영등위의 ‘일관된’ 기준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 듯하다.)
‘볼 권리’만큼 ‘보지 않을 권리’가 중요하다고 일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볼 권리가 표를 사는 선택에 의한 것처럼, 보지 않을 권리는 표를 사지 않음으로써 보장되는 것 아닐까? 우연히 접한 영상이 불쾌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를 막자는 건 문화가 모든 사람의 다양한 인식과 취향을 맞출 수 있다는 망상이나, 국가가 개인의 머릿속과 윤리적 기준을 통제해야 한다는 욕망의 고백 아닐까? <죽어도 좋아>를 놓고 아무개 기자는 당시 영등위 인사와 언쟁을 벌였다. “아니, 이걸 보고 흥분이 돼요?”(지면이라 표현을 순화했다) “난 흥분돼요.”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데 말이다.
그래서 김 감독이 정면으로 싸웠으면 했다. 2008년 제한상영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문구만 바뀌었으니 또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메일은 지친 예술가의 고백처럼 보였다. “한국 극장에서 개봉하기만을 피가 마르게 기다리는 저를 믿고 연기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려온 한국 감독이 없다. 거대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을 공개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의 영화는 먼저 개봉한 해외상영본이 불법 다운로드로 국내에 유통되는 상황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지금 나름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영희 문화부장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