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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백담사의 전두환 미니 기념관

등록 2013-08-05 19:09

백담사 극락보전 앞 화엄실
백담사 극락보전 앞 화엄실
지난 1일 설악산 가는 길에 백담사에 들렀다. 만해교육관 툇마루에서 하룻밤 비박하며 백담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었다. 옛날 만해 한용운도 저 물소리 들으며 <조선불교유신론>을 썼을 거란 생각에 잠 못 이루다가, 문득 전두환도 저 물소리 들었겠다는 생각에 비장한 감회가 코미디로 바뀌었다. 백담사 극락보전 앞 화엄실에는 아직도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는 현판이 자랑스레 붙어 있고, 전두환이 불경 베끼는 사진, 농사일 거드는 사진 등이 진열되어 있다. 백담사의 심장부에 전두환 미니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이건 권력에 대한 아부이자 현실 왜곡이다. 전두환은 12·12 쿠데타, 광주 학살, 5공 비리 등 국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끌려나가기 싫어서 도망친 것이다. 전두환의 백담사 도피는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추악한 죄상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 그걸 불경 베끼는 사진과 농사일 사진으로 가린 백담사도 죄질이 똑같이 나쁘다.

불교 전래 초기, 승려가 세속 권력에 복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살벌한 긴장이 감돌았다. 동진의 승려 혜원은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써서 재가 신도는 세속 권력에 복종해야 하지만, 출가 승려는 세속의 몽매를 깨치고 탐욕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세속을 초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해는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의 어용단체인 삼십일 본산 주지회의에서 강연하며 “똥이나 썩은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게 삼십일 본산 주지 네놈들이다!”라고 외쳤다. 권력자든 시주를 겁나게 많이 한 자든, 그들 앞에서 터럭만한 동요도 없는 게 출가한 사문의 기상이다. 백담사는 지금 자신들이 권력에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전시하고 있다. 선지식이 세속의 몽매를 깨쳐주기는커녕 되레 권력에 아부하는 몽매에 빠졌으니, 만해가 본다면 똥이나 썩은 송장보다 더 더러운 걸 또 보았다고 일갈할 것이다.

백담사는 만해를 그리는 다중이 찾는 곳이다. 만해와 후세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당장 전두환의 백담사 도피 이유를 제대로 적고, ‘전두환 체포조’가 전경에 제지당하는 사진 등도 함께 진열해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 만해의 후배 승려가 그런 기개도 없이 어찌 백담사 절밥을 먹는단 말인가.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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