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헐뜯어 자기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는 인류의 정치만큼 해묵었다. <시경>에는 참언을 일삼는 폭공이라는 이를 귀신과 물여우에 빗대어 준엄하게 꾸짖은 ‘어떤 사람인가’(何人斯)란 작품이 실려 있다. “귀신이 되고 물여우가 되면/ 볼 수 없지만/ 마주 볼 얼굴과 눈이 있으면서/ 사람 보는 눈에 표준이 없으니/ 내가 좋은 노래를 지어/ 치우친 너를 바로잡노라.” 네가 귀신이거나 물여우라서 참언과 모함을 일삼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인두겁을 쓰고 그 따위 행실을 일삼으니 내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 나오는 ‘물여우’란 놈이 흥미롭다. 물여우를 한자로는 ‘역’(蜮)이라 하고, ‘단호’(短狐)라고도 부른다.
물여우는 물속에 숨어 산다는 상상의 해충이다. 겉보기엔 자라처럼 생겼지만 발이 세 개이고 날개도 달렸다. 입 안에는 활시위처럼 생긴 혀가 있어 모래를 머금고 있다가 물기슭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면 활을 쏘듯 모래를 내뿜는다. 모래를 맞은 사람은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며,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림자만 맞아도 병에 걸리므로 이놈은 주로 야비하게 숨어서 사람 그림자를 공격한다. 여기서 남을 암암리에 모함하거나 공격해 자기 정치적 목적을 이룬다는 ‘함사사영’(含沙射影)이란 말이 나왔다. “모래를 물고 그림자를 쏜다”는 뜻이다. 모함꾼들은 ‘귀역’(鬼蜮)이라 부르고, 그들의 잔재주는 ‘귀역기량’(鬼蜮技倆)이라 한다. 개 한 마리 짖으면 동네 똥개들 다 따라 짖듯, 남을 모함하는 소리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는 아우성 소리는 ‘귀담역설’(鬼談蜮說)이라고 한다.
물여우를 어떻게 퇴치해야 하는가. 방이지의 <물리소식>은 거위가 뱀과 물여우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거위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물여우는 감히 사람 그림자에 모래를 뿜는 짓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위의 똥냄새가 지독해서 뱀을 쫓는다는 속설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거위가 물여우도 쫓을 수 있다고 믿은 것으로 보인다.
물여우가 정치판을 좌우하는 오늘, 걸걸한 울음소리로 물여우를 냅다 집어삼킬 거위는 어디 있는가. 거위여, 거위여!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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