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인은 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이때 처음 발표한 작품 중 하나가 ‘즐거운 편지’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이렇게 시작하는 이 시를 십대 후반에 나는 설레며 읽었다. 내가 아는 모든 여학생에게 적어 보내고 싶었다. 실제로 시구를 연애편지에 인용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 구절은 사랑을 절망으로 바꾸고 절망을 다시 기다림으로 바꾸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짝사랑이 바로 ‘기다림의 자세’였기 때문이다.
‘시월’도 황동규의 등단 작품 중 하나다. 나는 ‘즐거운 편지’보다 이 시의 서정성과 리듬을 더 좋아했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놀라울 정도의 조숙한 어투, 예스런 시어가 풍기는 정적인 분위기에 나는 바로 감염되고 말았다. 시월의 마지막 날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를 읽어주자.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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