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어느 검사의 일기 / 김이택

등록 2013-11-21 19:13수정 2013-11-22 15:30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나더러 정치검사라고? 웃기는 소리. 정치 좀 아는 것도 죈가. 정치감각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 낫지. 공안검사 시대라는데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

정치감각 없으면 열심히 일해 놓고도 욕먹기 십상이지. 권력이 뭘 원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정도는 돼야지. 윤석열이 좀 봐, 영웅이니 뭐니 칭찬하는 자들이 자기 인사라도 챙겨줄 거야 뭐야. 세게 징계를 먹는데도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욕먹는 건 잠깐이지만 벼슬은 자자손손 족보에까지 남는다는 걸 알아야지. 우리 선배들을 봐도 그렇잖아.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노란 봉투’ 하나로 공작을 정치로 승화시키며 자기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신 정형근 선배, ‘하룻밤 3차례 영장 청구’까지 해가며 노무현 구속시키려다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명대변인에 결국 국회의장까지 한 박희태 선배도 있잖아. 정의? 형평? 다 개나 갖다주라 그래.

일단 봉황의 뜻을 알았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어야지, 미적지근하게 하면 안 돼. 대화록 수사도 함 봐 봐, 중간발표 최종발표 둘 다 택일 한번 죽이잖아. 기초연금 때문에 각하가 얼마나 밤잠을 설치셨겠어? 근데 “의미있는 차이” 말 한마디 하니까 한방에 지면에서 연금 얘기는 쏙 들어갔잖아. 다음날부터 ‘저자세 표현 수정 가능성’ ‘저는→나는’ “최종본이 아니라 조작본” 줄줄이 알아서 받아주고 키워주잖아. 이 정도 감각은 갖고 있어야지.

정치적 중립이니 뭐니 듣기 좋은 소리에 신경 쓰면 큰일을 못해. 문재인이는 공개소환하고 김무성은 서면조사한 거 갖고 뭐라고들 하는데, 여당에 그 정도 프리미엄은 줘야지, 안 그러면 뭐하러 여당 해. 축구 야구에서도 홈구장에선 한 수 접어주잖아, 안 그래? 근데 김 선수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지? 우리가 “아직 검토중”이라고 했으면 말귀 알아듣고 시치미 떼고 있어야지, 서면질문서 받았다고 실토하면 우리 체면이 뭐가 돼.

그렇지만 우리가 또 장사 한두번 하나. 그런 위기의 순간에 잘 대처할 줄 알아야 큰일도 하는 법. “(수사)단계 중의 하나로 (먼저) 서면조사서를 보냈다” 이렇게 둘러댈 정도의 뱃심은 있어야지. 그리고 어쨌거나 나중에 김무성 정문헌 둘 다 불러서 조사했으니까 된 거 아냐? 마무리도 깔끔하잖아. 그런데 박지원이는 어디서 듣고 “기자들한테 문재인 되면 옷 벗겠다는 말 했냐”고 묻는 거지? 그래 봐야 국감도 끝났고, 기자 윤리 기본이 취재원 보혼데 설마….

국정원 댓글 사건도 그래. 정보기관에서 하는 일을 다 까발리면 어떡하자는 거야. 검사라면 나라 걱정도 하고 조직도 생각할 줄 알아야지, 저 혼자만 잘났다고 날뛰면 어떡해. 근데 트위트 글은 왜 자꾸 튀어나오는 거야. 너무 많잖아. 이러다 선거법 유죄 나오는 거 아냐. 물론 그래 봤자 난 이미 “무죄”라고 침 발라 놓았으니까, 노 프라블럼. 각하는 뭔 얘긴지 알아들으셨을 거야.

사이버사령부 건도 국방부가 잘 처리해야 될 텐데. 너무 덮으려다가 괜히 특검 여론만 키워놓으면 곤란하지. 김기춘 선배가 알아서 잘 처리하시겠지 뭐. 요즘 그 양반 하는 거 보면 역시 경륜은 못 속여. 야당이 아무리 난리 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유영익 김석기 문형표 다 밀어붙이잖아. 기춘 대원군? 부통령? 웃기지 말라 그래, 여왕님은 폼만 잡고 선배가 다 한다잖아. 당근 대통령이지. 우리 같은 공안검사의 성공모델이자 우상, 아니 진정한 영웅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이 정도 몸 던져서 해놨으니, 이번 인사 때 알아서 잘~ 챙겨 주시겠지. 진태 형님도 무시는 못할 거야. 그럼 그럼.(특정 검사와는 무관한 가상의 일기임을 밝혀둡니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198] 국정원·군이 공모한 ‘댓글 범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