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유럽 대륙을 떠돌며 살다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그의 방랑 생활은 기존의 체제와 인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작가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학적 사명감에 의한 타국살이는 불안정하고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단기 교사 생활로 근근이 가족을 부양해나간 그에겐 아내 노라 바너클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조이스는 평생 열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을 정도의 비극적 시력에 시달렸으나 창작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말년에 그가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재정적 후원자가 생긴 것은 문학을 위해 다행한 일이었다. 미국 출판업계는 <율리시즈>를 20세기 영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선정했으며,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오래 불화했다. 20세기 문학사에 변혁을 일으킨 그의 작품은 더블린의 음울한 외곽을 묘사하며 아일랜드의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병폐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율리시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형식을 빌려 1904년 6월16일 하루를 담은 소설로 당시의 더블린 모습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스스로 “만일 더블린이 완전히 파괴된다 해도 이 작품만으로 도시를 벽돌 하나하나까지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작품 구상부터 완성까지 15년이 걸린 <율리시즈> 이후 일 년이나 펜을 놓았던 조이스는 1923년 최후의 야심작인 <피네간의 경야> 집필을 시작하여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기울였다. 일부 후원자들마저 경악하며 지원을 끊었을 정도로 문학적 실험 정신을 극단으로 몰고 간 이 소설의 무대도 아일랜드이다. 16년에 걸쳐 완성시킨 이 저작을 57세의 생일 선물로 받은 2년 뒤 그는 타계했다.
오늘날 더블린은 <율리시즈> 주인공의 이름을 딴 ‘블룸즈데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문학 축제를 즐기고 여행 상품까지 출시할 정도로 조이스를 기린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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