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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뮤직 박스’

등록 2014-01-29 17:32수정 2014-01-29 17:33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코스타 가브라스는 그리스 출신인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영화감독이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공산주의자 혐의로 군부가 지배하던 그리스에서 대학 입학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매카시 선풍이 불던 당시 미국에서도 색깔을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해 프랑스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정치 영화로 명성이 높은데,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었던 독재의 배후에 깔려 있는 추악한 음모를 드러내면서 그것을 나름의 영상 언어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그리스, 체코, 칠레, 우루과이 등지에서 독재 정권이 어떤 역학 관계에서 유지되며, 그 악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세밀하나 강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뮤직 박스>라는 영화가 있다.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한 가정이 배경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과거 나치 경찰 특수과에 근무하며 학살에 직접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소송이 벌어진다. 유능한 변호사인 딸은 아버지의 무죄를 확신하며 손수 아버지의 변론에 나선다. 증인 심문을 위해 헝가리를 찾아갔던 그는 아버지를 협박하다가 최근에 죽은 자의 여동생 집까지 방문한다. 거기에서 그의 유품이었다는 뮤직 박스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딸의 마음속에서 의혹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재판에서 승소하여 아버지의 무죄가 확정된다. 그러나 그 뒤 무심코 듣게 된 뮤직 박스에서 아버지의 혐의가 사실이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나온다. 결국 딸은 증거 사진을 검사에게 보내 아버지를 고발한다. 이 영화가 더 와 닿는 것은 시나리오 작가 조 에스터하스의 개인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나치 부역자였던 것을 알고 난 뒤 의절했다.

효도를 강조하는 동양의 정서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정의와 가족 간의 유대 사이에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지 설 연휴에 생각할 거리를 주기에는 충분한 영화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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