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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국과수의 두 얼굴 / 김이택

등록 2014-02-17 19:06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가 화가 난 듯 자신을 찍던 기자의 멍텅구리 카메라를 손으로 냅다 내리쳤다. 서울 서소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실 앞 복도 바닥에 나뒹군 카메라는 망가져버렸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발생 1년 뒤인 1988년 1월 중순 무렵의 일이다. 경찰 수뇌부가 “쇼크사로 하라”고 강요했다는 자신의 일기장이 며칠 전 언론에 공개된 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1과장 황적준 박사였다.

그는 강민창 치안본부장 등의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사인을 사실대로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적어 양심을 지켰다. 일기장 공개로 강 본부장이 구속됐지만 그날의 모습을 보면 일기장의 언론 공개까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결국 그 일로 국과수를 그만두고 나중에 고려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나 양심과 진실을 지킨 상징적인 인물로 국과수의 역사에 남아 있다.

그와는 반대로 국과수 역사에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으니 바로 김형영 전 문서분석실장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는 지난 13일 강기훈씨에 대한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 재심 공판에서 김씨가 한 1991년의 필적감정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보면 그는 ‘ㅂ’을 ‘ㅇ’으로 보고 감정하는가 하면 필적감정의 기본원칙을 깨고 속필체와 정자체를 비교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했다. 또 감정을 혼자 주관해놓고 “4명이 돌아가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토의했다”고 허위증언까지 했다.

1992년 뇌물수수로 실형을 선고받는가 하면 나중에 무죄가 나긴 했으나 1998년엔 국유지 사취사건에 연루돼 허위감정을 한 혐의로 한때 구속되는 등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다. 결국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에서 결정적인 악역을 맡은 인물로 국과수의 역사에 오명이 남겨질 위기에 놓였다. 과연 자의에 의한 허위감정이었는지 양심선언이라도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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