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데버러 립스태트와 데이비드 어빙 사이의 홀로코스트 소송 이후의 사태도 흥미로울뿐더러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원고 어빙이 피고 립스태트와 펭귄출판사를 고소한 이 명예훼손 소송은 영국 법정에서 열렸다. 이런 경우 원고 쪽이 피고 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상례이나, 피고 쪽은 어빙에 대한 비판이 실체적인 진실이며 따라서 중상 비방이 아님을 명쾌하게 논증했다. 저명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역사가 리처드 에번스를 포함한 각국의 전문가 집단이 증언을 해준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결정타는 사법부가 날렸다. 이 사건을 주재한 찰스 그레이 판사는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334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작성해, 어빙이 2차대전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작했다는 것을 적시했다. 그 결과로 어빙이 홀로코스트 부정자, 역사 왜곡자, 인종주의자에다가 반유대주의자라는 평결이 나왔던 것이다.
명예 훼손 소송을 걸었다가 역사가로서 명예에 큰 손상을 입은 것은 데이비드 어빙이었다. 이미 체포 영장을 발부한 바 있던 오스트리아 정부에서는 그를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다. 법정에서는 홀로코스트가 있었다고 자신의 견해를 번복하며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역 후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후회가 없다고 재번복했다. 뉴질랜드의 언론인 모임에서 그를 연사로 초청했으나 정부가 입국을 금지시켰다. 그 모임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던 게 아니라 청문회를 하려고 불렀다고 해명했다.
반면 데버러 립스태트는 역사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를 불러 역사 특강을 청한 우리 집권당의 국회의원들과 달리 미국 의회에서는 립스태트를 초청하여 홀로코스트 부정자들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백악관의 자문 위원이 되기도 한 그는 <재판받은 역사: 홀로코스트 부정자와 법정에서 지낸 날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 책은 지금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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