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규제가 “암덩어리”라고? 해묵은 민원을 하나 해결해주었다고 그것으로 국민과의 소통은 다 했다고 여기고, 그것을 국민과 잘 소통하고 있는 증거라고 자랑하는 ‘불통’ 대통령의 무지함, 거기에 스며 있는 국가통치의 천박함이 이 말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보이는 만큼만을 진짜 세상이라고 착각한다.
자기 눈으로 본 한두 개를 전부인 것으로 아는 무지함이 필부필부의 얘기라면 그냥 ‘쯧쯧’ 하고 넘기면 되겠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얘기라면 일이 심각해진다. 더욱이 대통령이 본 그 한두 개가 재벌의 눈에 투시된 것이라면, 부동산 부자들의 눈에 투시된 것이라면, ‘종북몰이’에 혈안이 된 극우 보수주의자들과 종편들의 눈에 투시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들이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세력이라면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물론 암적인 규제도 있다. 처음부터 잘못된 규제, 환경이 변해 불필요해진 규제, 목적을 다한 규제, 그래서 없애야 하는 규제는 분명 있다. 그러나 다 들어내야 할 정도로 규제가 암덩어리라면 그건 분명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들이 문제라는 거다. 정부가 통째로 문제고, 관료가 ‘암덩어리’라는 거다.
마차가 길을 벗어나 수렁에 빠졌으면 마부가 문제지 왜 말이 문제인가. 말을 수렁으로 몰고 간 마부를 바꿔야지 왜 애꿎은 말의 목을 치는가. 팔이 뒤틀려 말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마부들은 그대로 두고 말의 목을 다 친다고 세상이 바뀔까. 말들은 가라는 대로 간 죄밖에 없는 것을. 정녕 세상을 바꾸려면 마부의 목을 쳐라. 마부를 바꿔 마차가 제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
관료조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의 직업공무원 제도는 이미 변질할 대로 변질해서 원래의 취지를 상실했다.
공무원들에게 정년 보장에 신분 보장, 게다가 국민의 혈세로 풍족한 연금까지 주고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는 이유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국민 전체의 봉사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정권이 변하더라도 공무원들은 변함없이 국민만을 위해 국민의 머슴으로 충실히 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영구히 변하지 않는 권력을 만들었고, 영구히 내놓지 않아도 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쓰게 되어 있다.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동질성이 높고 결속력이 강한 관료집단은 집단의 조직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집단이익에 봉사하도록 행사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선민의식까지 갖고 자신들이 국민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관료집단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만든 그들만의 특권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이 있지만 여기에 무슨 이론적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독자들이 알고, 공무원들도 알고, 우리 국민 모두 봐서 알고 있는 것을.
알고 보면 암세포도 자기의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대단히 유능한 세포일 뿐이다. 그런 유능한 세포들이 모여 집단의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면 그것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덩어리’가 된다. 개개인으로서의 공무원들은 더 없이 도덕적이고 사명감에 차 있겠지만 집단으로서의 관료조직, 그리고 관료조직의 일원으로서의 공무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직의 이해와 논리에만 따라 충실하게 움직이게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능한 인재들의 집단이 우리 국가경제의 ‘암덩어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관료조직, 그리고 영구히 내놓지 않아도 되는 권력 때문이다. 관료들이 대를 이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진정 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공무원 조직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하려면 조직으로서의 관료집단이 권력을 영구히 독점하지 못하도록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정 직급 이상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직업공무원 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한다. 고위 관료 집단이 주기적으로 교체되어 권력을 내려놓아야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혼란만 가중될 거라고? 방법은 있다. 실천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