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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눈이 밝은 사람

등록 2014-07-09 18:19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인문학 분야에서 교수직을 얻기 어려운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패멀라 톨러는 시카고대학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해 처음 지도교수와 대면했을 때 “교수 자리 없다는 건 알겠지?”라는 질문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학위논문 주제에 관심을 가질 소수의 전문가들보다는 훨씬 폭넓은 역사 마니아를 위한 밀도 높은 책을 써야겠다는 당찬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 인도의 역사에 대해 학위논문을 쓰긴 했으나, 정작 그가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방대한 규모의 저서를 통해서였다. 이 책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가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는데,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사실 방송이라는 매체는 책의 수많은 장점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실로 이 책은 빅뱅부터 오늘날 최첨단으로 발전한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역사를 아우른다. 그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인류 문명의 진화와 충돌과 동화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각 단계에 있어 그 변화를 이끌었던 핵심적인 발명품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전해준다.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대륙과 대륙이 만나고,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인간이 자연을 만난다. 이 책 속에서 동양사와 서양사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만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방대한 차원의 구조적 변화가 개인적 차원의 에피소드와 만난다. 그리하여 한때 역사학계를 풍미했던 작은 것들에 대한 미시사적 관심이 거대 담론과 조화를 이룬다.

한마디로 이 책의 저자 패멀라 톨러는 역사를 꿰뚫어보는 눈이 아주 밝은 사람이다. 그림 퍼즐의 낱낱 조각들을 헤아리면서도 큰 윤곽을 놓치지 않는다. 책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한 독서 경험이 언제였는지 아득한데,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줄 만한 책으로 추천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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