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서정시를 쓸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말이 자주 회자되는 것은 한국 상황의 거듭되는 참담함 때문일 테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맥락을 삭제하고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자’의 치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자’의 통렬한 절망 사이에 던져진 이 문장의 맥락은 이렇게 짚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시는 쓰여야 한다. 이 야만의 세상에서 도대체 왜/어떻게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물으면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략한 채 쓰인 서정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쓰인 서정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온몸으로 겪고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은 파울 첼란은 극한의 밀도로 다듬어진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고통의 성채를 드러내 보였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빛을 꺼뜨리지 않은 한 줌 희망의 얼굴을 직면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의 추함을 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품위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올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대면한 한 떨기 꽃, 물에 비친 어슴푸레한 별빛 같은 것이 인간을 살게 하기도 한다. 세계의 참혹이 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시들이 거리에서 ‘왜/어떻게’의 질문을 갱신하며 나부끼는 중이다. 희망이 없는데도 끝내 살아, 끝끝내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이 성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인은 도처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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