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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최재봉

등록 2014-10-14 18:44

셸 실버스타인의 우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올해로 출간 50돌을 맞았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주면서도 끝까지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 나무의 헌신과 희생을 다룬 이 이야기는 전세계 많은 독자에게 세대를 이어 가며 읽히는 현대의 고전이다. 그런데 나무의 사랑법은 정말로 올바른 것일까. 사랑을 ‘무기’ 삼아 끊임없이 얻어 가고 빼앗아 가기만 하는 소년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뉴욕 타임스>의 일요 서평 섹션 중 매주 작가 두 사람이 책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는 코너 ‘북엔즈’가 얼마 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법을 다루었다. 프리랜서 작가 애나 홈스와 소설가 리브카 갤천이 응답자로 나섰다. 이 책은 흔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는데, 그렇다면 “더 잘 사랑하는 요령을 배우라”는 것이 홈스의 제언이다. 영어 원작에서 나무가 삼인칭 여성 단수 대명사로 지칭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들 또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나무를 ‘장난감’ 삼아서 놀거나 ‘기생충’처럼 착취하는 소년(남자)의 모습이 남성의 특권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린 영혼들에 커다란 해악을 끼쳐 왔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갤천은 “자신을 파괴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내주는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킨다는 이유로 이 책을 비난하는 것은 자살하는 군인이 나온다는 이유로 <댈러웨이 부인>을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맞선다. 그가 보기에 이 책에서 독자가 읽어야 하는 것은 나무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받기만 하는 우리 모두의 괴물 같은 면모라는 것이다. 잎과 열매에서부터 시작해 가지와 줄기를 차례로 내주고 마지막에는 몸통이 잘린 밑동을 의자 삼아 내주는 나무의 사랑.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행복하게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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