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감사를 빠뜨릴 수 없다. 세 사람은 현 정권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들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힘의 원천은 인사권이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장차관부터 각종 위원회 자문위원까지 약 6400여개에 이른다. 정권이 바뀌면 보통 60만장의 이력서가 들어온다고 하니, 산술적으로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는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적다. 청와대가 간접적으로 인사에 관여하는 자리까지 합치면 약 3만개지만, 이 중 민정수석실이 직접 검증에 나서는 자리는 3천개 정도라고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밝혔다. 3천여개의 ‘자리’가 대통령 인사권의 직접 영향권 아래 있는 셈이다.
자리가 많다 보니, 어떤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힐 수 있는지 새로 정권을 잡은 쪽에선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52년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20년 만에 탄생한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루스벨트-트루먼으로 이어진 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깨고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도대체 어디에 어떤 자리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연방정부의 직위 리스트를 만들어 넘겨달라고 전임 정권에 요청했고, 이게 플럼북(Plum book)의 시초가 됐다. 그 뒤 4년마다 대선 직후엔 플럼북이 만들어져 차기 정권의 인사 지침서 구실을 한다. 플럼북은 동시에 새 정권이 어느 자리에 누구를 보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백서 역할도 한다.
김성주, 곽성문, 자니 윤씨는 그래도 공개된 자리에 간 ‘낙하산’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은 “이런 자리에 저런 사람이 갔나 싶을 정도로 일반 국민은 전혀 알 수 없는 ‘자리’도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우리도 플럼북을 만들면 최소한 ‘낙하산’의 규모와 실상을 정확하게 알 수는 있지 않을까?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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