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이것 한 포기에는 1300만개의 잔뿌리와 140억개의 실뿌리가 있다. 잔뿌리를 모두 이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까지 오는 거리다. 실뿌리는 솜털 같아 육안으로 안 보이는데 모두 이으면 1만6천 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남극과 북극을 이을 수 있다. 이 뿌리들은 흙으로부터 기초 영양소를 만들고 잎은 그 영양소를 받아 우리가 익히 아는 탄소동화작용을 한다. 식물 잎 뒷면에는 약 100만개의 공기구멍이 있고, 식물들은 이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호흡할 때 필요한 산소를 내뿜는다. 식물이 벌이는 탄소동화작용이 없으면 지구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땅속 7m 넘게 뿌리를 뻗어가는 이것 한 포기는 물론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진화해나가고, 저마다의 그 노력이 다른 생명과 지구 환경을 살리는 힘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이것 한 포기가 남극에서 북극까지 이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실뿌리를 만들어갈 때 꼭 성공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밀고 가다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런 생명성, 도전의지를 우리는 영혼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이것, 호밀 한 포기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은? 우리의 영혼은? 참으로 아팠던 한 해가 겨울 문턱에 왔다. 남은 자는 또다시 자신의 뿌리를 뻗으며 정성을 다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긍지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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