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청춘시절에 “덕분에요”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었다.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으면 내가 잘한 거지 웬 덕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추구와 ‘덕분에요’의 자세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십대 초반을 통과할 땐 심지어 세상에 태어난 게 그다지 고맙지도 않았으니, ‘덕분’이란 말이 실감될 수 없었다.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어렵고 타고난 피 탓에 냉소도 어렵던 이십대 중반을 지나자 내가 얼마나 ‘남의 덕’으로 사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한때 완전한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기도 했으나 이번 생엔 힘 부치는 일이란 걸 수긍하고 나자 더욱 그랬다. 나는 나 아닌 존재들 덕분에 살고 있었던 거다. 몸이 유지되지 않으면 마음이고 영혼이고 정신이고 옴짝할 수가 없다. 몸을 유지하는 의식주생활 어느 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하루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얼마나 많은 손들에 빚을 지며 사는지! 게다가 이젠 중국, 동남아, 남미 노동자들의 지구적인 수고까지 끼치며 살 수밖에 없는 시절이 되었다. 흔히 ‘나누는 삶’을 ‘베푸는 삶’이라 생각하지만, 순정하게 베풀 수 있는 존재란 성인들에게나 가능하지 싶다. 보통사람인 나는 다른 이들 덕분에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 과도한 빚쟁이로 살지만 않으면 된다. 돌아가야 할 때 자유롭고 경쾌하게 최대한 가볍게 떠날 수 있기 위해 말이다. 덕분에 살고 있으니 부지런히 나누자, 다짐하는 새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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