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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총장님들, 대통령과 싸우셔야죠

등록 2015-03-29 18:36

총장님들, 엊그제 서울총장포럼 창립모임 자리에서 대학 재정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재정이 어려운 이유가 반값 등록금 때문이라고 하셨다지요. 하지만 총장님들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요즘 대학 재정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반값 등록금으로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셨지요. 비록 ‘소득연계형’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국가장학금 지급총액이 등록금 총액의 절반이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지요. 박 대통령은 금년에 반값 등록금 약속을 실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킨 게 아닙니다. 거짓말을 한 겁니다. 냉정하게 표현하면 분식회계 수준의 사기를 친 거지요. 총장님들께서도 이미 내용을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등록금의 절반을 계산하는 기준으로 2011년 등록금 총액 14조원을 잡았습니다. 이상하지요. 2015년인데 왜 2011년을 기준으로 잡았는지. 첫번째 꼼수지요. 반값 등록금은 계속 시행할 텐데 앞으로도 2011년을 기준으로 할 겁니까? 말도 안 되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그 절반인 7조원을 국가장학금으로 지급하나요? 정부가 국가장학금으로 올해 교육부 예산에 잡아놓은 돈은 3조9천억원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박 대통령이 약속한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만 쳐서 그런 게 아니라 근로장학금 등 다른 것까지 다 긁어모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두번째 꼼수입니다.

그래도 압권은 세번째 꼼수입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만들어야 할 7조원 중에서 정부가 금년에 실제로 내놓는 돈 3조9천억원을 뺀 나머지 3조1천억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총장님들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시지요. 총장님들보고 만들어내라는 돈 아닙니까. 재단적립금을 사용하든 무슨 수단을 쓰든 자체 장학금을 만들고 그것도 안 되면 부족한 만큼 등록금을 인하하라고 압력을 받으셨지요. 박 대통령이 약속한 것은 분명히 국가장학금으로 반값 등록금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의 절반을 대학이 알아서 채워 넣으라니요. 이건 마치 음식값을 반값으로 깎아주겠다고 잔뜩 생색은 내놓고 깎아준 것의 반은 다시 뒷주머니에서 내놓으라는 거나 같은 말이지요. 이게 무슨 ‘반값’입니까. 이건 ‘반값 등록금 사기’입니다. 이러니 대학 재정이 어렵지 않으면 이상하지요. 대학 재정의 재원이 실질적으로 4분의 1이나 줄었으니 당연하지요. 박 대통령은 어느 틈엔가 ‘실질적’이란 수식어를 반값 등록금 앞에 슬쩍 붙였지요. 켕기기는 켕긴 모양입니다.

사립대학들이 어렵더라도 한두해는 자체적으로 3조1천억원을 마련해볼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이만한 돈을 대학들이 매년 어찌 만들겠습니까. 불가능하지요. 결국 대학 재정이 파탄 날 테니 몇 년 후면 반값 등록금이고 뭐고 다 없던 것으로 하고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겠습니까. 박 대통령이 이것을 노렸나요? 어쨌든 그때는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 있을 텐데, 그러면 박 대통령은 “나는 잘했는데, 후임자가 망쳤다”고 책임전가를 하시겠지요. 박 대통령의 특기지요.

총장님들께서는 대학 등록금 자율화, 기여입학제 등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지요. 재정이 어려우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네요. 청와대로 가십시오. 박 대통령에게 반값 등록금 나머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십시오. 대통령과 싸우세요. 학생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고. 무엇이 두렵습니까. 총장님들은 이 나라 지성의 상징이고 지식인의 대표자 아닙니까. 대통령이라고 두려워하실 것 없지요. 그리고 혼자도 아니고 서울총장포럼의 멤버만 40여분이나 되는데.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그리고 박 대통령을 준엄하게 꾸짖으세요. 총장님들은 교육자 아니십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젊은이를 속이는 그런 기만행위는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지요. 총장님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 많이 배웁니다. 그런 총장님들을 학생들은 존경합니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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